가을에 마을 축제가 열리는 이유
가을에 마을 축제가 열리는 이유
  • 경남일보
  • 승인 201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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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이전에 추수철을 피해 개천예술제를 열어야 한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수확하느라 일손이 바빠 농사짓는 사람들이 축제구경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저간의 사정을 배려해서였다. 이렇듯 가을걷이철에 농촌은 정말 바쁘다. 하지만 마을축제는 가을걷이가 막 끝나가는 요즈음 열린다. 수확을 끝내고 나서 바로 농한기로 넘어가게 되면 뭔가 찜찜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일까. 이렇듯 마을축제는 농민들 스스로 땀 흘린 노동을 위로하고 풀어주는 잔치나 마찬가지이다.



구경꾼에서 축제의 주인공으로

대개의 마을축제는 추수가 끝나는 때 열리고 마을사람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가을걷이 즈음에 열리는 마을축제는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나 해산물이 풍성하게 넘치고, 그것들을 재료 삼아 맛난 음식도 맛볼 수 있어 좋다. 차려진 음식이나 팔기 위해 내놓은 농산물 할 것 없이 모두 농민들 스스로 손수 길러낸 수확물이다 보니 정성도 깊고 인심도 후하다. 요즈음 시골로 가면 꿈꾸던 풍요로운 세상과 상상의 추억이 있는 진정한 축제를 만날 수 있어 참 좋다.

원래 농경시대의 마을축제는 사람들을 일체감으로 공동체를 결속시켜 생산활동으로 이어지게 해주는 폭발적인 에너지원이었다. 이전에 마을축제는 정월 보름과 추석 전후로 풍물을 치는 신명난 잔치판으로 열렸다. 정월 보름의 축제 때는 한 해 농사를 잘 짓게 해달라고 염원했고, 가을걷이 후의 축제 때는 한 해 농사 잘 마무리해준 것에 감사하는 축원을 했다. 어쩌면 근대화 이후에 도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축제를 만드는 ‘축제인‘인 줄 모르고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도시인들이 순전히 구경꾼이 된 이유는 축제 만들 줄은 모르다 보니 그저 즐길 곳만 찾아다니는 축제 소비자여서 아닐까.

하지만 요즈음은 다르다. 최근에는 주민이 만드는 면단위의 농촌이나 어촌의 마을단위로 축제가 많이 생겨났다. 그러한 움직임은 비단 농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도 동이나 골목단위로, 상가번영회와 예술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거리축제나 골목 페스티벌이 열린다. 축제를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상인들은 상인들대로 침체된 시장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그리고 동호인이나 전문 예술가든 상관없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러 골목이나 거리로 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치열했던 ‘한 해 살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위해 축제장을 마련한 ‘주인공’들인 셈이다.

올해는 부쩍 더 많은 작은 마을축제와 골목축제들이 열렸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축제도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걱정도 커진다. 어떤 어촌마을의 작은 축제는 작년에 주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주목받게 되고, 올해부터 큰 축제로 다시 시작하면서 생긴 부작용으로 걱정이란다. 원래는 주민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소박한 축제였는데, 초청가수까지 등장하면서 축제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단다. 마을이 속한 군의 군수님의 관심이 커지면서 공무원들의 간섭도 커졌단다. 주민들은 주차장도 만들고 민박집 알선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 이른바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불만이 크다.



마을축제의 주인은 주민이다

마을축제는 관광축제와는 다르다. 관광축제는 관광객 편리를 위한 편의시설이나 교통편을 따지지만 마을축제에서 그런 걸로 걱정해서는 안된다. 마을축제에 가면 초청가수는 없어도 마을 사람들의 신명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는 그냥 현지의 사정에 기반을 두고 외지인들이 찾아와 함께 놀다 가면 그만이다. 마을축제가 성공하고 나서 지원을 빙자해 관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신명 잃은 마을주민들이 주변부로 물러나게 되면 축제는 망치게 된다. 마을축제를 하는 이유는 농민들 스스로 땀 흘린 노동을 위로하고 풀어주기 위해 여는 잔치라서가 아닐까.
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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