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인생] 함양 이상옥·윤공임 부부의 '한지'
[외길인생] 함양 이상옥·윤공임 부부의 '한지'
  • 최경인
  • 승인 2014.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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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한지 맥 잇는 사람들
세상에는 한 가지 일이나 목적에만 전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를 이어 오직 한 길만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외길 인생을 걷다보면 ??로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게 대부분이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 전통산업이 명맥을 잇는가 하면 하나의 직업으로써 눈길을 끌기도 한다. 본보에서는 대를 이어 외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고집스런 이야기를 담아본다./편집자 주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 몇 가지나 될까. 함양군 마천에서 생산되는 한지가 여기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요즘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한지는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고 바람을 통하게 하며 냄새를 빨아들이고 공기를 맑게 해 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있다. 이런 한지가 이제 외국에서 싸게 들여온 종이에게 자리를 빼앗겨 설 곳 없이 방황하고 있지만 아직 함양에서는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한지를 제작하고 있는 부부가 있다. 마천면 창원마을. 함양군에서 유일하게 한지를 만들고 있는 이상옥(68)·윤공임(64)씨 부부다. 특히 한지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손발이 척척 맞아야 가능한 작업이다. 이들 부부는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함께 한지를 만들어 왔다.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내내 부인이 대답을 하고 할아버지는 ‘맞제’ ‘그라지’ ‘그려’하며 맞장구를 쳐 주며 답한다.

이상옥 할아버지는 정확히 언제부터 한지를 만들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가 농한기 때 이 일을 해 왔다. 예부터 함양군 마천면은 한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창원마을 이곳은 한지를 안 만드는 가정이 없었을 정도로 집집마다 이 일을 해왔다. 지리산에서 자라나는 닥나무를 채취해 이것을 찌고 벗기고, 삶고, 뜨고, 그 어느 곳보다 질 좋은 한지를 생산해 냈다.

이씨 부부가 결혼할 1970년도에는 한지 2000장에 13만원 가량에 거래됐다. 당시 하루 인건비가 2000원, 금 한 돈이 2800원, 마천 골짜기 논 한마지기(200평)가 2만5000원이었다 하니 한지 한 장 가격 65원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외국의 종이들이 싼 값에 들어오고 집들이 개량돼 한지 수요가 급감하면서 그 명맥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상옥씨는 “예전에는 창원마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이를 만들었다. 인근 지역은 물론 함양군 내에도 곳곳에서 종이를 만들었는데 문풍지 바르고 벽지 바르고 한지가 없어서 못 팔았지. 근데 지금은 외국에서도 들어오고 (사용하는 곳이 한정되다 보니 많이 팔리지가 않아)사용할 곳이 없어져 팔리지 않아”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곳이 군내 유일한 한지 생산 공장이다.

2002년에 내습한 태풍과 집중호우로 공장이 부서지고 재료가 떠내려가 다신 한지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가족의 권유로 2013년 초 가업을 잇기로 결심하고 집 근처에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 겨울 막내아들(35)이 서울 직장을 그만두고 이 일을 배우겠다고 내려와 있다. 처음에는 반대 했지만 착실히 전통 방식대로 열심히 거짓 없이 한지를 만들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같이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 마천면에서 함양군 유일의 이씨 한지 공장을 시설보수도 해 줘 겨울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직접 재배한 닥나무만을 고집한다. 또한 닥나무와 함께 필수적인 닥풀도 직접 재배해 두드려 풀을 만들어 사용한다. 모든 것이 순수 수작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배우기에는 여간 어렵지 않다. 이씨 부부는 직접 재배한 닥나무를 채취해 솥에서 찐 뒤 익으면 껍질을 벗겨 며칠간 말리고 차가운 물에 담근 뒤 얼리면서 속을 불려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한지의 원료를 만든다. 이 원료를 닥풀과 함께 (한지를 뜨는)통에다 넣어 한지를 생산한다.

이씨는 2번을 떠 1장의 한지를 생산한다. 일반적으로 1번 떠서 1장을 생산하는 방식과 달라 한지가 질기고 잘 찢어지지 않는다. 이씨의 한지가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 이유다.

하나에서 열까지 옛날 방식으로 전통을 고수하다 보니 더 힘들다. 한지를 만드는 발 하나를 70만원 주고 올 초에 구입했다. 지난해까지는 합천에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전주 한 곳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다보니 가격은 부르는 게 값. 한지를 빗는 빗자루 또한 전국을 수소문해서 구입했다. 한지는 갈대 빗자루로만 비질을 할 수 있다. 이씨는 갈대를 직접 가지고 가 빗자루 만드는 사람에게 부탁하며 갈대빗자루를 만들어왔다. 한지를 뜨는 시기는 봄 3~4월, 가을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생산해 연중 판매한다.

수작업으로만 이뤄지다 보니 하루 100장 안팎으로밖에 생산할 수 없다. 1년에 2달여 가량 생산에 전념하니 약 7000장 정도 생산이 한계다. 힘들게 생산된 한지가 엄청난 고가에 판매되는 것도 아니다. 가로 석자 세치 세로 두자 두치 이렇게 한 장에 3000원에 판매된다. 생산된 한지를 찾는 이들은 스님들이나 화가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들어 문화재청과 대학 등 미술 관련 사람들이 사서 쓴다. 이곳에서 생산된 한지는 10년이 지나도 좀이 슬지 않는다.

이씨는 “한지를 세장 네장 겹치면 총알도 못 뚫어. 예전에는 이 종이로 갑옷도 만들었지. 지금은 마천 참닥. 지리산 참종이로 불러. 이건 서울 사람들이 부르는 거야. 수입 종이가 아무리 좋다 해도 품질은 못 따라가지”라며 한지의 우수성을 자랑했다.

아내인 윤공임씨도 친정에서부터 종이를 만들어 왔다. 지금은 종이 뜨는 것은 남편이 하고 대신 대부분의 일들은 그의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조금은 비싸지만 그래서 품질이 우수하며, 조금은 만들기 힘들지만 그래서 더욱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우리 한지. 함양 한지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옥·윤공임씨 부부.

건강이 좋지 않아 이 일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고 걱정해 온 이씨 부부는 올 겨울 그래도 든든한 지원군 아들이 있어 다행이다. “내가 그만두면 이제 함양에서는 종이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이씨는 이제 4대째 한지를 만들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힘든 길임에도 전통방식으로 제작하는 한지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마천 골짜기에서 오늘도 불을 지피고 있을 이씨 가족을 둔 우리는 행운아다. 자연을 담은 한지를 더 오래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최경인기자

닥나무를 채취해 솥에서 찐 뒤 껍질을 벗겨 며칠간 말리고 차가운 물에 담근 뒤 얼리면서 속을 불려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한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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