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4-H운동, 국가발전의 원동력
<농업이야기>4-H운동, 국가발전의 원동력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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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지원기획과 고객지원담당)
우리나라 4-H운동의 태동은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활동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중단의 위기를 맞았다.

그 후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52년 정부가 4-H운동을 국가시책사업으로 채택함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전쟁으로 황폐화된 산업의 각 분야를 도와주기 위해 53년 한미재단이 발족됐고 민간단체인 한국4-H구락부 중앙위원회가 결성됐다. 일련의 정책수립과 후원체제를 바탕으로 4-H운동은 전후 복구와 농촌재건운동과 연계해 추진하다 62년 농촌진흥청이 발족되면서 정부의 조직적인 지원으로 4-H운동은 발전의 기틀을 마련됐다. 65년 4-H민간단체 육성, 4-H연합회 육성 등을 통해 활성화의 여건을 마련했으며 또한 4-H회원의 연령을 10~20세에서 13~24세로 변경하는 한편, 전국대학4-H연구회연합회 결성과 4-H신문의 발행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70년대 활화산처럼 일어난 새마을운동과 함께 추진되어 농어촌의 환경개선, 농업생산기반의 정비, 주곡의 자급기반 확충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새마을운동보다 20여년 앞서 시작된 4-H운동은 새마을운동의 밑바탕이 되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었다. 81년 한국4-H중앙연합회가 창립돼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원단체로 가입하면서 조직관리가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이관되어 4-H구락부 명칭도 새마을청소년회로 바뀌었으며 4-H운동은 새마을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어 100만 회원이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87년 한국4-H운동40년사를 발간하여 그간의 역사를 정리하였고 88년에는 4-H회라는 이름을 되찾는 등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에는 농촌에 기반을 두었던 4-H운동은 산업화로 침체기를 맞았으나 90년 한국4-H회관을 건립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아 불우이웃돕기 등 인보활동을 전개하고 학생4-H회를 통해 지·덕·노·체의 이념을 확산시켜 지역사회 청소년교육 운동으로 뿌리를 내렸다.

2000년대는 새로운 사회변화에 발맞춰 회원의 연령을 9~29세로 지금은 9~34세로 조정해 회원 배가운동을 전개하고 4-H의 3대행사인 청소년의 달 행사, 야영교육, 경진대회를 더욱 내실 있게 추진하여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청소년 활동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특히 4-H활동지원법을 제정했다.

현재 우리 도에서는 영농4-H회 17개회 355명, 학생4-H회 180개회 7196명(지도교사 320명), 4-H지도자 19개회 657명이 지역 곳곳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농업·환경·생명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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