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기행 (60)자굴산 관광순환도로
윤위식의 기행 (60)자굴산 관광순환도로
  • 경남일보
  • 승인 2014.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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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구비 산길 따라 물들어 오는 가을
윤위식의 기행
자굴산 관광순환도로

가을은 여행을 떠나는 계절이다.

청명한 하늘은 먼 풍광까지 즐길 수 있게 하고 춥지도 덥지도 않아 차림새까지 홀가분하여 좋은데 선선한 공기의 청량감은 기분까지 상쾌하고 오곡백과의 풍요로움이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여 더욱 좋은 계절이다. 눈시울을 지긋이 감기게 하는 새금한 가을의 맛에 취하면 까마득한 세월 저편의 기억들이 뜬금없이 떠오르며 세월에 묻혀버린 얄궂은 지난날과 잊혀져 멀어져 간 아련한 옛 추억이 옛 사람들까지도 새삼스럽게 불러내어 그리움에 젖게 한다. 이럴 땐 호젓한 산길을 살갑게 걸으며 먼발치의 시골풍경을 내려다보면 고향마을이 아니라도 정겨움에 어리어 옛 세월 속으로 빠져들어 살아온 과거사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이야 시골길 어디를 가나 들녘은 풍성하고 높낮음을 가리지 않고 사방의 산들은 오색단풍으로 울긋불긋 치장을 하여 만추의 정취가 숨이 막히게 갑실 때라서 먼 길 갈 것도 없이 의령의 자굴산 관광순환도로를 한 바퀴 돌까 하고 차를 몰았다.

의령읍의 날머리인 서부삼거리에서 두시 방향의 의병로를 따라 1km 남짓 가다가 가례면 소재지 못 미쳐서 우회전을 하여 곧장 가면 노랗게 물든 벼논들이 줄지어 선 좁다란 골짜기가 꽤나 길게 이어지는데, 서암저수지를 지나 청소년수련원 조금 못 가서 자굴산 관광순환도로는 산길로 이어졌다.

길섶으로 나와 선 들국화의 해맑은 영접이 일상에서 찌든 온갖 시름을 개운하게 씻어주는데 비탈진 산길을 잠시 오르자 백련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솔숲 사이로 난 시멘트 길로 접어들게 한다. 빼곡한 소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은 산길은 산등성이를 타고 급커브에 급경사로 꼬불꼬불 이어졌다. 한눈 팔 겨를도 없이 저속 기어로 숨 가쁘게 올라가는데 한참만에야 경사가 완만해지기에 한숨 돌릴까 했더니 주홍 빛깔로 물든 활엽수의 가지 사이로 백련사의 기와지붕이 얼핏얼핏 보이더니 꽤나 널따란 주차장에서 노랗게 물든 노거수의 팽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윤위식의 기행
백련사 고로쇠나무
울긋불긋한 자굴산의 단풍이 천년고찰 백련사의 단청과 어우러져서 영롱한 빛깔로 길손까지 물들인다. 대웅전 앞에 선 두 그루의 고로쇠나무는 진주홍으로 곱게 물이 들어 황홀경을 이루는데, 오색영롱한 단풍 속에 파묻힌 심산 절집은 쥐죽은 듯 고요하여 고즈넉하다 못해 괴괴하고 적적한데, 축대 위로 대웅전의 쌍바라지 문이 열린 어두침침한 법당 안으로 가물거리는 촛불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본존불은 엄숙함을 더하고, 축대 아래로 비켜 앉은 용왕각의 돌거북이 쏟아내는 청정수 떨어지는 소리만 고요한 정적을 더욱 깊게 한다.

대웅전의 협문으로 들어서서 헌향의 예를 갖추는데 먹장삼 차려 입고 정갈하게 가사를 걸친 노스님이 사시마지공양을 올리려고 놋그릇의 마지를 어깨 위로 받쳐들고 들어섰다. 합장의 예를 갖추자 묵언의 미소로만 답을 하고는 마지를 올려 놓고 염불을 하는데, 기력의 쇠진함인지 하심의 끝자락인지 모기소리를 간신히 능가할 뿐이고 청아한 목탁소리만 산사의 정적을 깨트리며 심산계곡으로 여울져 갔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눌려서 나오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마지기도 동참자가 되어 원도 없이 절만 해댔다. 생각나는 소원도 없어 딱히 빌어보지도 못하고 ‘지심귀명례’와 ‘석가모니불’만 따라서 얼버무리는데 신중탱 앞으로 마지를 옮겨 놓은 스님의 염불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마하마 하고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어정쩡해지면 절을 하기를 한참이나 거듭해서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하기에 이제야 끝나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니 부처님께서야 꾸지람 꽤나 하셨을 게다 싶어 넙죽 절을 하고 법당문을 나섰다.

요사채 옆으로의 기암괴석이 예사롭지 않아 커다란 바윗돌을 쌓은 석축의 모롱이를 돌아들자 커다란 바위들이 하나 같이 납작한 육면체인데 커다란 책을 세워서 꽂은 것 같이 바위들이 겹겹으로 꼿꼿하게 섰다. 바윗돌을 병풍삼아 옴쏙하게 자리를 잡은 산신각이 옛 건물을 헐어내고 다시 짓는 중이었다.

바위마다 재단을 한 듯이 납작하고 길쭉한 육면체라서 예사롭지 않은데 대웅전 앞마당에 단풍이 곱게 물든 고로쇠나무가 눈길을 끈다. 기이하게도 밑뿌리의 새움이 원줄기를 감아 돌아서 한몸이 되었는데 도드라지게 감은 줄기가 어른 팔뚝만 하고 원목은 아름드리로 족히 수십 년은 된 것 같은데 높은 가지도 옆의 가지를 틀어서 감았다. 분재의 수형을 잡듯이 인위적으로 꼬았나 했더니 주차장 옆의 노거수인 팽나무도 바닥에서부터 두 그루가 끌어안고 붙어서 한 나무로 되었다.

윤위식의 기행
자굴산 백련사
참으로 이상하다 싶어서 지금은 흔적만 남은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 보았더니 서어나무도 서로가 용틀임으로 꼬여서 하나의 나무가 되었고, 또 다른 종의 나무도 서로를 껴안아 하나가 되어있다. 바닥에서부터 배를 맞대고 꼬여져 하나가 된 것도 있거니와 하나의 둥치가 중간에서 다른 가지를 틀어서 껴안은 것과 Y자의 가지 사이로 옆의 나무를 틈새도 없이 끌어안은 것과 별별 모양으로 서로가 한몸처럼 얼싸안았는데 하나 같이 같은 종의 나무끼리만 서로를 껴안았다. 연리목이고 연리지라고도 하겠지만 하나도 아닌 주변의 여러 나무가 서로를 부둥켜안았으니 구전 속의 ‘상사’가 붙은 ‘상사목’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사전적 표제어는 아니지만 구전과 전설 속에는 끊임없이 전해 오는 뱀사자(蛇)의 상사는 상사병으로 죽은 넋이 실뱀으로 변하여 상대에게 달라붙는다 하였는데 벼의 이파리 가운데로 흰줄이 생긴 것을 ‘상사벼’라 하고 남해 금산의 상사바위는 치성을 드려 상사를 풀었다 하여 상사바위이고, 하동과 사천의 경계인 이명산의 상사바위는 치성을 드려도 상사가 떨어지지 않아서 투신한 바위라고 해서 상사바위라고 하는데, 이 말고도 상사바위는 얼마든지 있는 것으로 보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학술적인 분석은 학자들의 몫이고 이곳 산세의 기운이 서로를 끌어안는 곳이라면 연인들의 사랑맹세를 외국 가서 다리난간에 자물쇠를 매달 것이 아니라 이곳에 와서 맹세를 한다면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갑을리 마을의 가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인데 겹겹의 산봉우리들이 물결같이 이어지는 골짜기마다 햇살을 받은 오색단풍의 영롱한 풍광에 젖으며 왔던 길을 꼬불거리며 조심스럽게 내려와 이어지는 자굴산 관광순환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모롱이를 돌아올라 한우산과 어깨를 마주한 쇠목재에 닿았다. 정상의 단풍은 이미 암갈색으로 빛이 바랬는데 등성이를 타고 흐르는 울긋불긋한 오색물결의 단풍은 절정을 이루며 골짜기를 빈틈없이 찬란하게 물들였다.

자굴산과 한우산이 맞닿은 계곡으로 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양편으로 형형색색으로 영롱한 단풍이 한껏 불타는데 길 양편으로 도열한 단풍나무의 가로수가 유난히도 빨갛게 물들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꼬불꼬불하게 이어지는 순환도로를 따라서 원점으로 회귀하려고 작은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빼곡하게 돌탑이 줄지어선 ‘천지사’가 내리막길 옆으로 작은 계곡을 끼고 가을이 깊어 버린 만추의 들녘을 내려다보며 호젓하게 앉았다.

널따랗게 주차장을 마련하고 커다란 바윗돌을 층층이 포개서 높다랗게 쌓아 올린 돌탑이 줄지어 선 산문으로 들어서자 높다란 돌계단 위로 자그마한 대웅전이 굽어보며 반긴다. 크고 작은 서너 동의 당우들이 절집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갈하게 앉았고 대웅전을 돌아 층층석계를 오르자 지천으로 널린 자연석을 촘촘히 쌓아서 독립문과도 흡사한 아치형의 문을 높다랗게 세우고 안으로 꽤나 널따란 산신당을 모셨는데 둘레에는 범종 모양의 웅장한 돌탑들이 장관을 이룬다.

두고 온 속세인연 잊을 길이 없어서 그리움 올려놓고 돌 하나 눌러놓고, 눈물 젖은 장삼으로 흙먼지 닦아내며 서러운 마음 올려놓고 돌 하나 올리면서, 천륜도 묻어 놓고 인륜도 묻으면서 질기고도 모진 인연 이돌 저돌 올려가며 108번뇌 떨치려고 불철주야 쌓았을까. 무슨 사연 그리 많이 이토록 쌓았을까!

헌향의 예를 갖추고자 대웅전에 들어서니 석가의 진신사리를 품은 석조여래좌상은 사바세계를 향한 잔잔한 미소를 그윽하게 머금었다.





윤위식의 기행
천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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