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거창재래시장>
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거창재래시장>
  • 이용구
  • 승인 2014.09.28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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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동네 사람들 친절한 낯빛이 반가운 시장
거창전통시장 내 시장통 한 모퉁이에 시골 노인들의 사랑방인 낡고 허름한 진미집(주막)이 있다.

이빨이 빠져 얼굴이 더 쪼글쪼글해 보이는 한 노파가 신원막걸리 한 잔을 들이켠 후 젓가락 타령을 한다. 젓가락 장단에 맞춰 움직이는 할머니의 손가락에는 황소등짝처럼 누런 금가락지가 번쩍 그리며 햇살에 빛난다.

“이내 밭골 어서매고 님의 밭골 질러매세, 임의 밭골 매는 뜻은 굼뜻묵고 질러매세, 한골 매고 두골매고 삼사골을 어여매고 배고파서 우는 애기 젖미기로 어여가세.” 거창 민요 ‘삼베일 소리’다.

서부경남 최북단에 위치한 거창군은 예로부터 삼베의 고장이었다. 지금도 북상면 갈계리, 가북면 용산리 등지에서는 삼을 재배한다.

“내가 처이(처녀)로 있다가 산도적같이 생긴 놈한테 시집 가서 제일 먼저 배운 노래가 이 노래다. 땡볕 아래서 쐬가 빠지게(힘들게) 삼을 심으몬서 부른 노래잉기라 흐흐흐.” 노파가 거창민요를 멋들어지게 한곡 뽑자 주막 손님들이 어깨춤이 절로 들쑥날쑥.

거창 전통시장에 오일장이 섰다. 진미집 옆 포항 묵집에서는 도토리묵 무침 주문하는 남정네 소리가 요란스럽다. 거창 아침족들은 묵사발로 해장을 한다. 거창전통시장은 거창읍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시장내 허름한 대포집


거창읍의 진산은 아홉산(건흥산), 신라 선화공주와 백제무왕의 애틋한 사랑이 펼쳐진 곳으로 유명하다. 풍수가 박갑동씨에 따르면 “아홉산의 산룡과 수룡이 마치 산수회포(山水回抱)하듯 한바탕 어우러지다가 거창읍에 당도했다가 전통시장 지점에서 예쁘디예쁜 꽃 하나를 피우는데 그 꽃이 바로 연이외다. 그래서 거창전통시장 형국은 연화부수혈입니다.”

연화부수혈(蓮花浮水穴)이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을 의미한다. 연꽃을 일러 처염상정(處染常淨), 비록 지저분한 곳에서 꽃을 피워도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어 불교에서는 만다라화라고 부른다.

거창전통시장이 연화부수혈 연꽃동네에 위치해서 그런지 시장 상인들도 죄다 연꽃처럼 맑은 심성을 지녔다.

거창시장은 사람을 끄는 고유의 매력이 있다. 물건만 사러 가는 게 아니다. 그냥 바람 쐬러 소일 삼아 구경을 가는 일이 많다. 어느 곳에서 건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아무리 돈이 대접받는 인간, 소외의 시대라 해도 따뜻한 마음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시장 메인 거리에는 거창시장 명물 손송편, 순대국밥 가게들이 있다. 조가비 모양으로 송편을 빚어 참깨를 볶아넣고 설탕과 간장으로 버무려 소를 넣어 만든다.

거창 재래시장에 들어서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펄펄 끓는 커다란 솥에서 구수한 냄새가 끊임없이 솟아난다. 고객들은 이곳에서 뚝배기에 가득 담긴 순댓국 한 사발을 깍두기나 묵은지를 밑반찬 삼아 땀을 흘리면서 주린 배를 달래고 있다.

이곳에서 파는 순대는 피순대다. 피순대는 말 그대로 선지순대인데, 돼지의 작은창자에 선지, 당면, 숙주 등을 밀어 넣고 양 끝을 묶어 쪄낸다. 당면 대신 찹쌀을, 숙주 대신 양배추를 넣기도 한다. 파, 마늘, 생강, 참기름 등으로 비린내를 없앤다. 거창지방의 토속적인 맛이다. 거창시장 내 모든 순대국밥집이 저마다 내공이 있어 별미이지만 최근 뉴스메이커가 된 식당이 있다. 우창분식. 음식맛은 가히 걸작이고 식당 내부도 아주 청결해 손님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일전에 김두관 전 경남지사, 홍준표 지사 등이 거창군에 초도순시 올 때마다 굳이(?) 이 집을 찾았다.

소설가 이명행, 영화감독 김재수, 시인 박관식씨들이 구두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강력추천, 화제를 모은 거창전통시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 식당은 돼지머리뼈를 24시간 넘게 푹 고아 뽀얗게 국물을 우려낸다.



 
송편을 만들고있는 아주머니
우창분식의 순대전골


주인의 말이다. “제대로 된 순대를 만들려면 신선한 돼지창자를 뒤집어서 굵은 소금이나 밀가루를 이용, 공들여 문질러 씻어내야 합니다. 잘 씻은 후 물에 더 담가 냄새를 우려낸 다음 선지 돼지고기 야채류 재료를 섞어 버무려 내장에 채우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순대를 손님들이 맛있게 드셔 주시니 퍽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거창시장의 또 다른 명물은 약초가게. 많고 많은 약초가게 가운데 쓴오이(여주)를 판매하는 판수농산을 소개한다. 이 가게 명물은 유과다. 세밑이 되면 경향 각지에서 이 집 유과를 구입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다. 가게주인 신판수씨 아내 유과 솜씨는 별다르다. 일두 정여창 고택으로 유명한 함양군 지곡면 전통요리 비법대로 유과를 만든다.

유과. 사방 20㎝가 넘는 넓적하고 두꺼운 산자로 튀밥이 통째로 붙어 있어 먹으면 바스스 부서지면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이다. 신판수씨 아내가 전통유과 만드는 법을 들려준다.

“유과를 만들려면 우선 찹쌀을 물에 1~2주일 정도 담갔다가 곱게 빻아 체에 내린다. 콩물과 소주, 물을 조금씩 부어 덩어리로 뭉쳐질 정도로 반죽해 찜통에 젖은 보를 깔고 약 40분 정도 찐다. 이것을 그릇에 담고 방망이로 꽈리가 나도록 여러 번 쳐서 반죽이 곱게 되면 넓은 도마에 가루를 뿌린 뒤 그 위에 붓고 방망이로 두께 0.5㎝ 정도로 밀어서 조금 굳어지면 원하는 크기로 자릅니다.”

채반 위에 한지를 깔고 갈라지지 않을 때까지 말린 다음 미지근한 튀김기름에 넣어 불어나면 모양을 바로 잡아준다. 다시 두꺼운 기름팬을 130~150℃로 달구고 뒤집어가며 튀긴 후 완전히 부풀면 얼른 건져내 기름을 완전히 뺀다. 여기에 고아낸 엿을 발라 깨끗한 고물을 묻힌다. 고물로는 튀밥을 굵게 빻아 옷을 입히거나 들깨, 참깨, 흑임자, 잣가루 등을 묻히기도 한다.

이외 거창시장은 온갖 별난 사물들의 집결지다. 덕유산 깊은 산속에서 채취한 능이버섯 산더덕 산도라지 하수오 등이 시장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위치한 왕자상회, 시장고추방앗간, 창성그릇, 럭키가방, 우신상회, 현대이불, 아림부산, 성심세탁, 세일프라자, 대흥돗자리, 남상상회, 대구해물, 풍년농기구, 22번상회, 시장떡집, 거창두부, 영진식당, 평산축산 같은 가게들이 고객을 반기고 있다.

거창 5일장이 설 때 거창전통시장에 가보라. 재래시장 특유의 무질서와 난잡함, 웅성거리고 떠들썩한 북새통의 활기가 넘쳐흐른다.

이용구기자
쓴오이를 한국에 최초 재배한 신판수 농부
토란을 깍고 있는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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