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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19)<80>남강문학회 회원들의 진주 나들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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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5: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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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19)
<80>남강문학회 회원들의 진주 나들이(3) 
 
필자는 님강문학회의 기간 3인방으로 정재필, 성종화, 정봉화를 내세울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남강문학회가 만들어지는 연원에 놓이는 회원들이다. 곧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진주에서 보내면서 문학통을 앓았고 이후 직장 정년 어우름에서 지난 날의 문학 불씨를 살려내는, 선인생-후문학(先人生, 後文學)의 과정을 갖는 작가라는 점에서 하나로 묶이는 일군의 문인이다. 필자는 이런 성격을 지닌 시인 작가를 ‘후문학파(後文學派)’로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진주 나들이에서 정재필과 성종화는 참석했지만 정봉화 수필가는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 후문학파 3인방의 공통분모는 두 가지다. 진주 출생이라는 점이 그 하나이고 중학교를 진주중학교(3회)에 다녔다는 점이 그 둘이다. 정재필과 성종화는 고등학교 시절 학원지에 시를 투고하여 실리는 이른바 ‘학원파’로 알려졌고 그만큼 조숙한 문학소년들이었다. 정재필은 진주중학을 나와 진주사범학교- 부산대 국문과를 나왔고 성종화는 진주중- 진주고(재학중 개천예술제 장원)- 검찰 공무원으로 이어졌고, 정봉화는 진주중- 부산고- 육군사관학교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오늘은 정재필과 성종화의 경우는 ‘파성 설창수 회고’쪽에서 이미 다루었으므로 제외하고 정봉화 수필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까 한다. 정작가는 ‘윤필용 장군, 사실과 진실’이라는 윤장군 평전 성격의 저서를 낸 바 있으므로 윤장군에 대해 잘 아는 입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종화는 정봉화 수필집 ‘또닥 또닥’ 발문에서 “윤필용 장군, 사실과 진실‘에서 보여준 부하로서 한 평생을 일편단심으로 상관을 모신 군인정신, 청암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에게는 오직 성실 하나로 인정받아 성공한 이야기와 박회장이 해외에서 어렵게 지나는 시절 아무도 접근을 못하는데도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의리는 우리를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다.”고 적은 바 있다.

정봉화 작가가 고등학교를 부산고등학교로 가는 길목에는 중학 동기생 최병렬(한나라당 대표, 서울시장)이 있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쓰고 지원하고 하는 사이 아직 진학할 학교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부산에 가서 부산고 원서 2장을 사가지고 온 최병렬이 “봉화야, 부산고 원서 받아라. 같이 부산으로 가자.”하는 바람에 친구 따라 장에 가는 식이 되었다. 부산을 가면서 제일 서운한 것은 3년 동안 한 반(담임, 3년 연속 안정기 선생)에 있었던 성종화를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부산고에서는 최병렬 외에 허문도를 친구로 삼을 수 있었다.

정봉화가 육사를 지원할 때 교장은 이한림 장군, 교무처장은 박태준 장군이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순조롭게 다니고 하자없이 18기로 임관을 할 수 있었다. 그의 학력사항을 보면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대학 석사, 박사과정을 거쳐 2000년 2월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군대생활의 역정을 생각할 때 학위과정을 이수하고 학위를 땄다는 점이 특별나 보이는데 이는 군인정신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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