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의 영어강의, 바람직한가?
대학에서의 영어강의, 바람직한가?
  • 경남일보
  • 승인 2014.11.1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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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요즘 국내 대학에는 영어강의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영어강의란 영어영문학과나 영어 관련 학과에서 영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과목 외에 다른 과목 또는 다른 전공에서 강의 전체를 영어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시행하는 이유는 국제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이고 또 강의의 글로벌화를 통해서 학문적 깊이의 제고 및 전문지식의 함양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영어강의를 통하여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영어강의가 늘어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중앙일보나 조선일보와 같은 국내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대학평가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언론사들의 대학평가 지표는 크게 교육, 연구, 국제화, 졸업생의 사회진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대학의 입장에서는 다른 지표의 관리보다 국제화 지표의 관리를 통한 지표개선이 단기간에 가능하고 더 수월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학 차원에서 부담해야 하는 외국인교수 채용이나 외국인 유학생 유치 외에도 전체 교과목 중에서 영어강의 비율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어강의를 확대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영어강의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대학들도 있다. 예를 들면 성과급적 연봉제가 실시되고 있는 국립대에서는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에게 별도의 가점을 주고, 학생들의 성적평가에서도 일반 강의는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면서 영어강의에 대해서는 절대평가를 허용함으로써 교수들의 영어강의 유인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자연·경상·이공계열을 불문하고 영어강의 개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영어강의의 질이나 학생들의 만족도의 측면에서는 과연 대학의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학의 학과와 전공은 전문지식을 연구하고 배우는데 있어서 효율적인 구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문지식이란 교재와 강의를 통한 소통에서 함양될 수 있는 것이다. 전공에 따라서는 영어강의가 훨씬 유용한 분야가 있기도 하겠지만, 우리말로 강의해야 학생들이 학문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많을 것이다. 대학 본연의 임무는 진리와 학문의 탐구이며, 올바로 이해하고 습득한 전문지식이 바로 경쟁력이다.

영어강의의 진행방식도 문제이다. 순수하게 영어로만 진행하는 강의는 드물고, 영어와 한국어를 혼용하여 진행하거나 심지어 대부분 한국어로 강의를 진행하고 영어는 가끔씩 등장하는 그야말로 무늬만 영어강의인 경우도 많다. 학기 초에는 영어로 강의하다가 점점 한국어 강의로 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영어강의라서 수강신청을 했는데도 담당교수가 한국어로 강의해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더욱이 외국에서 생활하다 온 학생들이나 외국인 유학생들이 영어강의인데도 불구하고 담당교수의 강의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영어강의에서 교수가 사용하는 영어가 정통 영어가 아니고, 사투리 억양마저 가미된다면 결국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교재학습을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에 대한 외국인 유학생들의 평판은 어떻겠는가?

대학의 교수들 중에는 영어강의를 잘 할 수 있는 교수들도 있고 국제화시대에 영어강의가 필요하고 유용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이 진리와 학문의 탐구라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대학평가에만 치중한 결과로서 개설되는 영어강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전공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학생들이 강의시간에 담당교수와 소통하며 강의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습득하는데 유용한 언어는 한국어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어강의는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할 것이며, 대학은 학생들이 영어강의다운 영어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거나 검증된 교수에 한하여 영어강의를 개설하게 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는 대학다움이 있어야 한다,

 
오창석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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