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통영장>
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통영장>
  • 허평세
  • 승인 2014.10.2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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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열린 시장…싱싱한 거래 오가는 곳
5일장  2
5일장


‘통영에 가서 돈 자랑 하지 마라’라는 옛말이 있다. 해산물이 사시사철 넘치도록 풍성해 이곳 어민들은 그날그날 적지 않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어 생긴 말이다. 실제 해산물을 취급하는 수협만 해도 7곳이 넘을 정도로 바닷사람들에겐 말 그대로 축복받은 땅이라 불린다.

이처럼 귀한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통영지역은 갓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비롯 전국 여러 장으로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 즉 장돌뱅이들이 2일과 7일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5일장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상업 기원은 고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군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상업은 화폐 사용이 필요할 정도로 발달해 있었고 기자조선시대에 이미 행상인 등짐장수가 있었다고 전한다.

통영에서는 조선 후기에 상업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통영지(규장각도서 12186)에는 성 아래의 시장터가 원래 협소해 다 수용하지 못했는데, 채동건 통제사가 1872년에 강구를 넓게 새로 매립해 많은 백성들이 장을 보는데 편리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3도 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설치된 선조 37년( 1604년)께부터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당시 시장에는 미전 35곳과 포목전 23곳, 물화전 17곳, 남초전 20곳과 해삼도가 8곳이 있었으며, 해삼도가는 거제와 고성, 남해를 근거지로 하는 나무와 야채상인과 오랫동안 교역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들 중 4개의 상점과 도가가 위치했던 곳은 통영성의 남문 밖, 즉 현재의 중앙시장 한복판이며 이들이 바로 중앙시장의 효시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당시 통영시장의 성격은 순수한 장시, 즉 보통시장이 아니라 통제영의 보호를 받고 있던 관설시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각종 기록을 종합해 볼 때 통제영시대 통영시장의 실상은 대규모 관설시전으로 상인들이 국역을 부담했을 가능성이 크고, 둘째는 통영시장이 매일 열리는 상설시장이 아니라 한달에 여섯번 열리는 5일장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통영 강구를 드나들던 장배들도 통제영에 군영 수요물자가 긴급히 반입돼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상적으로 2일과 7일에 맞춰 출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통영시장은 장시라고 기록돼 있지만, 강구가 대량의 군수물자를 매개로 하는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던 만큼 시장규모는 인근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열린 가장 낮은 소매상이 아니라 도매업도 겸한 지방중앙시장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전통 깊은 중앙시장은 상설시장으로 허가를 득하기 전부터 고정 상인들이 점포세를 내고 매일 영업을 하는 상설화된 시장성격을 띠고 있었다.


 
5일장 1
5일장 3


특이한 것은 중앙·서호시장이 민영화된 상설시장으로 허가받은 뒤로도 5일장의 정기 시장인 옛 통영장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요즘도 정시 개장일인 매월 2일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이면 노점상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1984년 1월28일 중앙시장인 충무데파트가 상설시장으로 개설되면서 전국의 각종 상인들이 모여들기 시작, 이제는 통영시 중앙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충무데파트를 돌아 예전 천일약국에 이르는 이르는 폭 8m가량의 400여m 길이 도로 양켠이 온통 통영지역 농업인들은 물론 전국 상인들의 무대로 변했다.

이 때문에 장날만을 찾아다니는 상인들이 제자리마냥 차지, 방금 텃밭에서 뽑아 온 무 등 각종 채소와 눈이 부실 정도의 푸른 빛을 잃지 않은 갈치, 방금 따 온 감과 배, 생강, 길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각종 화분, 코앞으로 바로 닥친 겨울용 이불과 담요, 과자, 화려한 무늬의 각종 의상, 화장품 등 완전 만물상들 차지로 거리가 온갖 물건들로 가득 메워진다.

이런 가운데서도 상당수 통영 시민들은 평소 즐겨찾는 대형마트를 외면한 채 5일장 날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해 보인다. 5일장 설 때면 모처럼 살웃음으로 값을 깎고 있는 풍경은 영락없는 살림꾼 아낙네 모습이다.

인근 고성에서 고추를 팔러 나왔다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통영은 해산물이 풍부해 밭에서 나온 채소를 팔아 생선들을 바꿔 집 식구들과 나눠 먹는 재미로 자주 통영장을 찾는다”고 했다.

전국을 무대로 각종 의류를 팔고 있던 50대 초반의 어느 부인은 “우리는 전국 장날만을 찾아 다녀 집에 들르는 날이 별로 없어 자식들 교육에 지장을 많이 주고 있다”면서 “그래도 통영 장날마다 만나는 단골 고객들과의 흥정 순간이 즐겁고, 전국 각지 인심을 소상히 알 수 있는 장점이 덤으로 남아 장돌뱅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푸념 비슷한 장꾼들만의 불만 아닌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이에 뒤질세라 옆에 장보러 왔던 김모(56·여) 아주머니는 “최근 들어 상당수 주부들이 대형마트를 찾고 있지만, 나는 꼭 장날만을 골라 필요한 물건을 사고 있는데 값도 싸고 흥정만 잘하면 공짜나 다름없는 값으로 물건을 살 때도 있다”며 통영 5일장 예찬론을 늘어놓기도 했다.

통영 5일장은 오늘도 전국 각지 만물상들의 벼룩시장으로서 자손대대 내려가며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고, 통영시민들 또한 5일장 향수를 가슴속 깊이 안고 살아갈 것이다. 허평세기자 hpse2000@gnnews.co.kr

사진설명: 통영 5일장 이모 저모
5일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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