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105>거창 숙성산
명산 플러스 <105>거창 숙성산
  • 최창민
  • 승인 2014.11.2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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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내리던 산에서 물빛에 홀리다
숙성산 오름길에서 돌아 본 합천호 전경, 호수 너머 왼쪽이 악견산 오른쪽이 금성산 중앙이 허굴산이다.
빨갛게 익은 감이 무채색의 풍경에 포인트를 주고 있다.


밤하늘 별이름과 관련된 산이 한라산이다. ‘한라자이운한가라인야’(漢拏者以雲漢可拏引也),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큼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의역하면 은하수를 부르는 산이다.

우리 고장에도 밤하늘 별을 보며 점을 쳤다고 해서 붙여진 산 이름이 있다. 거창 숙성산(907m)은 미녀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로 지난주 다녀온 보해산 맞은편에 있다. 산맥은 백두대간에서 정맥 기맥으로 흘러 오도산 숙성산으로 이어진다.

산 이름은 한자 ‘잘 숙(宿)’과 ‘별 성(星)’의 조합이다. 신라 말 승려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팔도 명지를 찾아다니다가 합천 가야산 오도산을 거쳐 이 산 아래에서 노숙하며 별을 보고 점을 쳐 숙성산이다. 이 산에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자 ‘숙(宿)’이 ‘별자리 수’의 의미도 있으니 숙성산은 별과 관련된 산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거창군에서 최근 세운 정상석 뒤편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일명 봉대산으로도 불렸는데 인근에 있는 봉화대와 관련이 있다.

▲산행은 1099도로 학산마을 입구→학천사→학산마을→봉화재→봉화대→전망바위 1, 2→숙성산→시리봉→말목재→산소→기리 광성마을로 이어진다. 광성마을에서 출발지로 돌아오려면 도로를 따라 20여분 정도 학산마을까지 걸어야 한다. 8㎞에 휴식포함 5시간 40분이 소요된다.



 
들머리에 있는 학산마을


▲오전 8시 40분, 4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인 88고속도로 거창 가조IC에서 1099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1km 정도 진행하면 정면에 숙성산이 나타난다. 그 왼쪽에 머리를 헤쳐 풀고 누운 산이 미녀산, 오른쪽 줄기가 숙성산이다. 겉보기에는 유방봉 눈썹바위 등 오밀조밀한 암릉이 빼어난 미녀산에 비해 조형성은 다소 떨어지는 민둥산이다.

도로 옆 학산마을 입구에서 100여m 정도 오르면 학천사 대웅전 주차장에 닿는다. 다시 마을 앞 들녘 길을 따라 6분 정도 오르면 학산마을, 오른쪽으로 회관까지 진행하면 그 앞에서 등산 안내도를 볼 수 있다.

학산마을은 예부터 풍수학적으로 ‘학설’이라 했고 ‘학’에다 높은 곳에 있어 한자 ‘산’을 붙여 학산이 됐다. ‘푸드득’, 이른 아침 저수지에서 먹이사냥을 하고 있던 청둥오리 5∼6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하늘을 박차고 오른다.

5분 정도 시멘트 임도를 따르면 마을 뒤 능선에 닿는다. 이곳에서 산으로 바로 오를 수 있지만 취재팀은 봉화대를 둘러보기 위해 멀리 보이는 봉화재로 향했다. 고도를 제법 까먹고 떨어졌다가 다시 치올라야 한다.

대형 포클레인을 동원해 임도개설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봉화재는 합천과 거창의 경계로 임도 너머에는 오도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합천이다.

9시 30분, 봉화재는 임도개설을 위해 잘려 있어 흉물스럽다. 오른쪽이 월현산 방향이며 이 재에서 길 찾기가 쉽지 않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희미하나마 등산로가 열린다.

처음부터 된비알. 산행객이 많지 않은 탓에 길이 희미한데다 길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드세 힘이 든다. 낙엽까지 차곡차곡 쌓여 등산화가 무색할 만큼 미끄럽다.

봉화대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채 잡초가 무성하다.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돌무더기만이 과거 봉화대였음을 말해 줄 뿐이다. 봉화대 터임을 알리는 안내판은 빛이 바래고 낡았다.

이 봉화대는 사천의 안점산(봉대산)에서 진주 망진산, 광제산, 합천 삼가 금성산을 거쳐 거창 숙성산에 닿았다가 금귀봉, 새재로 향한다.

“어! 뭐지?” 앞서 간 산우가 풀 섶에서 동물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토끼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폈더니 큰 고라니가 ‘펄쩍 펄쩍’ 날뛰었다. 반사적으로 움직임을 쫓아 카메라 셔터를 눌렀으나 사진은 찍혀 있지 않았다. 불과 1, 2초, 앞에 있는 나무가 파인더 중앙을 가려 버렸다. 겨울철 먹이가 별로 없어 이곳까지 내려온 고라니였다.

드센 길을 올라 안부에 닿는다. 이 산에서 처음 만나는 이정표는 숙성산 800m를 가리켰다. 학산마을에서 바로 올라오면 1.6km, 봉화재 봉화대를 거쳐 올라오면 2.2km가 되는 지점이다. 햇살 좋은 곳곳에 생뚱맞게도 봄에 피는 진달래꽃이 몇 송이 피었다.



 
겨울에 핀 진달래
갈림길 구렁지에서 만난 억새밭.


오른쪽으로 난 바위 전망대에 서면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찬란한 전경이 펼쳐진다. 합천호를 앞에 두고 왼쪽 악견산, 오른쪽이 금성산 중앙에 허굴산이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오른쪽에 황매산이 보인다. 합천호 풍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정상에서 잘 안보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진촬영을 하는 것이 좋다.

합천호 방향 전망대에서 10여분을 더 오르면 이번에는 북쪽 왼쪽에 가조들판이 펼쳐진다. 들판을 중심으로 환형의 명산이 즐비하다. 보해산 우두산 비계산 미녀산 오도산…. 숙성산 정상까지는 몇 개의 봉우리가 감질나게 이어진다. 정상인가 싶어 올라서면 또 작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11시 14분, 2시간 30여분 만에 숙성산 정상에 닿는다. 최근 거창군에서 화강암을 이용해 정상석을 새로 세워 놓았다. 군에서는 정상 표지석이 없거나 오래된 관내 6개의 산정에 거창의 특산물을 형상화해 디자인한 표지석을 세웠다.

삼봉산에는 거창사과, 시코봉에는 웅양포도, 망덕산(망실봉)은 거창군 지도, 거말산(봉우산)은 웅양곰을 형상화했다. 숙성산은 가조온천지형을 형상화한 것이다.

산정을 떠나 구릉지형이 발달한 안부 갈림길까지 고도를 낮춘다. 왼쪽은 학산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 정면에 보이는 산은 시리봉, 멀게는 통신시설이 우뚝한 오도산이다.

오도산은 한국표범이 마지막으로 생포된 곳이다. 표범은 1962년 2월 12일 오도산 해발 1134m지점에서 산 아래 묘산 가야마을에 살던 ○홍갑씨에게 생포됐다. 서울 창경원으로 옮겨진 뒤 12년 동안 살다 생을 마쳤다.



 
이름 모를 열매


갈림길 안부에 억새가 수술을 흩날리며 가을 풍취를 전한다. 이어 표지석 없이 코팅지로 새겨 걸어놓은 836m, 시리봉을 지난다.

낮 12시, 이른 점심으로 1시간여를 휴식한 뒤 30여분 만에 말목재에 내려선다.

말목재 갈림길. 숙성산에서 1.9km 지난 곳으로 직진해 전방에는 2.6km 지점에 미녀봉이 위치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1.5km 내려가면 지실골 오도산 자연휴양림이다. 계곡과 숲이 어우러진 캠프장이 있어 여름철 피서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오도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도 있다.

취재팀은 왼쪽 광성마을 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았으나 도중에 길을 잃고 말았다. 워낙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탓에 안내리본도 없고 길도 희미했기 때문이다. 결국 계곡으로 내려서 물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20여분을 더 내려왔을 때 오른쪽 능선에서 봉분이 큰 산소를 만나 등산로와 합류할 수 있었다. 길이 없는 곳은 위험하지만 오후 늦은 시간이 아니어서 여유를 가질 수는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는 이름 없는 각종 산열매와 다래넝쿨, 칡넝쿨 등이 자연 그대로 터를 잡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말목재에서 1.9km 정도 내려오면 산길은 끝나고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오후 2시 20분, 감이 익어도 따 낼 기미가 전혀 없는 작은 동네, 기리 광성마을에 도착한다. 광성마을에선 20여분을 더 걸어 학산마을에 회귀한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낙엽이 쌓인 등산로를 걷고 있는 산우들

 
gn20141122거창숙성산 명산 105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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