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보다 이모가 더 가까운 현실
고모보다 이모가 더 가까운 현실
  • 경남일보
  • 승인 2014.12.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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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창 (농학박사)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가족관계를 그려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부분의 개구쟁이 꼬마 녀석들은 고모가 없이 이모만 있는 가족관계의 가계도를 제출하였기에 선생님께서 왜 고모가 없고 이모만 있지? 라는 질문을 던지자 고모는 일 년 중에 한 번도 보기가 어렵지만 이모는 자주보기 때문에 자주 보는 가족을 중심으로 가계도를 그렸다는 답변에 선생님께서 어리둥절하였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듣고서 정말 고모보다 이모가 더 가까운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한편 다문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외국인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기준을 식당에서 종사하고 계시는 분의 호칭을 이모라고 부를 수 있을 때라는 말에서도 한국에서는 고모보다는 이모가 더 정다운 모양이다.

이 외에도 내 아이들에게 이모는 한없이 좋은 친구이자 이야기 상대이며 또 하나의 엄마가 된다. 실례로 부산시 교육청 산하 기관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 3학년까지 2294명을 대상으로 ‘인성 실천 덕목에 대한 태도 및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 하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가정에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으로 64%가 어머니를 꼽았으며, 이모를 선택 한 순위가 아버지 보다 앞섰다는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어느 집이든 또래의 조카들 사이에서는 고모보다는 이모가 더 가깝다. 집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다못해 ‘이모네 파전’, ‘이모네 곱창집’은 있을지언정 ‘고모네 백반’, ‘고모네 떡볶이집’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식당 아주머니에게 이모라 부를지언정 고모라고 부르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이렇듯 고모는 엄숙함의 느낌을 줄 때, 이모는 친근함의 분위기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을 부계사회 구조에서 모계사회로의 무게 중심이 전이되는 단면이라고 볼 수도 있고, 남매 쪽보다는 자매 쪽이 더 살가운 정을 나누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

더욱이 부모의 형제를 가리키는 ‘삼촌(외삼촌)’과 부모의 자매를 일컫는 ‘이모(고모)’의 명칭이 최근 젊은 층 부부들을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떠나 친구나 지인으로까지 일반화되면서 정확한 호칭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출산의 영향으로 형제나 자매가 없거나 한두 명에 불과하고 이들마저도 떨어져서 자주 보지 못하는 시대상황에 따라 친한 친구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삼촌이나 이모로 호칭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화가 혈연관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만큼 무분별한 호칭 남발을 바로잡아 호칭체계나 가족관계를 둘러싼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서 삼촌과 이모는 가족 호칭 · 지칭어로만 인정하고 있으면서 전통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삼촌, 이모의 의미를 확장해 쓰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언어는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의 쓰임에 따라 의미가 바뀌므로 단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국어원의 입장이다. 실제 삼촌 · 이모의 사전적 의미가 가족관계로 한정돼 있는데도 언어생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삼촌과 이모의 의미를 확장해서 쓰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자식에게 자신의 친구를 가리켜 아저씨, 아줌마 대신 삼촌,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는 부모 대부분은 친근감을 가장 큰 이유로 든다. 하지만 삼촌·이모를 자주 쓰던 젊은 부모 층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딸아이에게 외가와 친가의 호칭어들을 가르쳐주는데 갑자기 내 친구인 ‘○○삼촌은?’ 하고 물어서 난감했다”며 “언어사용을 조심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하는 젊은이도 있다는 사실에 필자는 최소한의 위로를 느낀다.

박남창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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