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
  • 경남일보
  • 승인 2014.12.1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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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여행자’와 ‘관광객’은 다르다. 둘 다 시공간적으로 길을 떠나 길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좀 닮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최근 우리나라를 떠들썩하도록 한 북한 방문경험을 소개한 ‘신은미 토크 콘서트’의 진실은 그녀가 진정한 여행자였는지, 관광객인지 알게 되면 그 진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25년간 동양으로 여행한 경험담을 유럽에 전한다. 그가 본 동양은 세계인들이 평생 먹어도 모자라는 소금산과 황금의 나라, 개의 머리를 한 사람이나 눈이 세 개 달린 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같은 황당한 이야기가 참 많다. 그래서 그가 죽자 그를 ‘마르코 밀리오네(Marco Milione)’, 즉 ‘백만 가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이라고 하면서 비꼬기까지 했다. ‘마르코 폴로’의 황당하기만 한 이야기는 나중에는 ‘콜럼버스’를 자극해 황금의 나라를 찾아 떠나도록 했다. 이렇듯 새로운 세상을 보고 온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긴가민가해 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해 믿기 쉽다.

그래도 과거에 여행자들은 어려움을 겪어가면서 스스로 여행길을 열어가는 진정한 모험가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품화된 관광은 전문가이드가 아무 위험 없이 모험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한 것들이다. 가이드는 속도를 빠르게도 늦추기도, 행로를 마음대로 바꾸기도 하는 운전대 잡은 기사처럼 관광객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잘 훈련된 북한가이드를 동반한 ‘신은미’씨의 북한여행은 잘 포장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도록 고안된 하나의 관광상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관광상품은 곧잘 관광객들이 상품성의 진위를 두고 혼돈에 빠질 정도로 관광지에서 진짜 같은 사건과 풍경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이미지와 환상’의 저자인 ‘부어스틴(Boorstin)’은 이를 두고 원하는 관광객들의 기대가 반영된 가짜사건(pseudo event)이라 했다. 가짜사건은 관광객이 바라는 이미지와 실제로 본 것이 일치한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신은미’씨도 ‘굶어 죽는 가난한 나라에 꽃가게가 이렇게 많을 수 있나’ 생각하니 풍요로운 나라로, 경건해 보이도록 꾸민 교회 예배에 참여하고서 ‘종교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구나’ 하고 착각할 수도 있다.

북한방문 이야기의 주인공인 ‘신은미’씨의 경험담은 북한의 실상을 경험한 진정한 여행자라기보다는 자신이 본 것을 감동에 빠지기 쉬운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북한을 가본 적이 없다. 그렇다보니 불쌍한 동포가 힘들게 살아가는 북한을 ‘살 만한 나라이더라’는 식으로 전하는 한 관광객의 새로운 이야기가 솔깃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광차 갔다 온 사람의 겉핥기식 체험이 북한의 실상 전부일 수는 없다. 당연히 ‘신은미’씨의 북한 방문기는 전국 순회 토크쇼를 해가면서 우리에게 알릴 만한 ‘진짜’ 북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관광객’이 되지 말고 ‘여행자’가 돼라는 격언이 있다. 진정한 여행자는 자기 발로 길을 찾아가며 세상을 뒤져다니는 모험가나 마찬가지이다. 그에 비해 ‘신은미’씨는 멋진 풍경만 골라 보도록 북한 측이 고안하고 연출한 ‘무대화된 관광(staged tour)’을 경험한 관광객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제까지 북한당국이 어떤 여행자에게도 자유로운 여행길을 열어준 적이 없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하는 증거이다.

 
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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