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다리야] 통영 충무 운하교
[아이고 다리야] 통영 충무 운하교
  • 허평세
  • 승인 2014.11.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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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나폴리 위로 솟아 해저도로와 쌍벽
 
충무 운하교 1


옥포와 당포해전에서 패한 왜적은 73척의 대전선을 이끌고 거제도 견내량에 진을 치고 정박하고 있었다.

이 정보를 접한 충무공은 곧 배를 띄워 왜적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유인하고 학익진을 펴 무찌르니 왜선이 불에 타 품은 연기는 하늘을 뒤덮었고, 화살에 맞아 넘어지며 파선돼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바다는 온통 피로 물들었다. 이 싸움이 이른바 ‘한산대첩’이다. 살아 남은 자는 살 길을 찾아 서쪽으로 도망가 지금의 통영시 미수동과 당동 사이 판데목에 다다랐다.

물에 막혀 빠져 나갈 수가 없었던 왜적은 급한 김에 야밤을 틈 타 좁은 목을 파서 도망갔다. 이때부터 통영 방언으로 ‘판데목’이라 불렀으며 왜인들은 ‘다이고오보’라고 불렀다. 이것은 임진란의 괴수 풍신수길의 최고 관직명이 다이고오였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옛날에는 충무시와 마주보는 미륵도와의 최단 길이 50m 바다목을 건너기 위해 무지개형으로 돌다리를 놓아 겨우 인마가 통행하고 다리밑으로는 작은 배가, 그리고 양쪽으로는 나룻배가 움직여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1932년에 이르러 이 목에 확장공사를 시작해 길이 461m, 폭 5m, 높이 3.5m의 해저터널을 굴착해 행정 통폐합전 충무시와 미륵도, 산양면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 해저터널은 우리나라 동양 최초의 것이며 동양 유일의 명물로 등장했다.

특수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이 해저도로는 개통 20년 만인 1950년께부터 바닷물이 새어들기 시작했다. 한때는 통행을 못할 정도로 물이 꽉 찰 때도 있었다. 대형차량 등장과 인구 팽창, 교통량 증가, 해저도로 노후 등 갖가지 이유로 1970년 이후 사람만 통행하고 차량은 일절 통행을 금지시켰다.

해저도로 양쪽 입구에 ‘용문달양’이라고 돌에 새긴 이름이 있다. 이것은 양쪽 다 용문을 지나면 태양빛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바다밑으로 가서 어느 한쪽으로 나오면 빛에 달한다는 것이다.

충무운하는 옛날 임진란 이후 판대목으로 불러오던 곳으로 워낙 좁은 곳이기 때문에 그 전에는 아치형의 돌다리를 조선조 영조 33년(1757년)에 제19대 통제사 오인후가 세운 것을 고종 32년 제208대 통제사 홍남주가 고쳐 인마가 통행했고 밑으로는 작은배가 다녔다.



 
충무운하교 2


1927년부터 1932년 12월까지 해저도로가 시작되는 도천동과 당동을 거쳐 인평동까지 1420m, 양쪽 바다 거리 55m, 바다 깊이 3m의 운하지대 축대와 도로를 만들고 충무운하라 부르게 되니 세칭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렸다. 이곳 야경은 일대 장관을 이루면서 산책지로서는 최적의 장소로 꼽히기도 했다.

또한 충무시민의 오랜 숙원이던 해저도로상에 높이 18m, 길이 152m, 폭 10m의 아름다운 무지개형의 현대식 충무 운하교가 우뚝 솟아 해저도로와 함께 쌍벽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다리는 1963년에 착공, 1967년 9월27일 개통해 미륵반도를 가로지르고 관광도시 당시 충무시 면모를 새롭게 해 충무 운하교로 명명됐다. 이에 통영시 인구 13만9000여명 중 3만5000여명이 생활하고 있는 산양읍과 봉평동, 미수동 주민들의 유일한 시내 나들이 통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미륵산 케이블카까지 들어서 관광차량 교통량이 폭증하자 교량이 노후화해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아치형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고 교량 아래로는 쾌속선들이 바다를 가르며 연출하는 하얀 포말 장관까지 덤으로 구경케 하는 추억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충무 운하교는 수년 전만 해도 미륵도 지역 중소 조선 경기의 호황에 힘입어 각종 조선소들이 난립, 철판 등 각종 기자재를 실은 중대형 화물차량들이 충무 운하교를 이용해 한때는 엄청난 하중에 못이겨 대대적인 보수작업까지 하는 등 충무 운하교는 조선소 기자재 운반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운하교 밑으로는 청정해역이 수많은 생선들을 불러모아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 유명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도남관광단지 개발로 관광객 증가와 미륵도내 택지 개발로 주거 인구가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충무 운하교에 집중돼 있는 교량을 분산하고 교통난을 해소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서 1993년 12월 발주한 길이 594m, 폭 20m의 통영대교를 새로 개설해 1998년 12월 개통했다. 통영대교는 당동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제2의 교량으로 현재는 넘쳐나는 관광차량들의 분산효과로 충무 운하교 교통량을 많이 흡수하고 있다.

1967년 개통한 충무 운하교가 긴 역사를 자랑하며 온갖 풍상 속에서도 지금도 자태를 뽐내며 교량을 건너는 보행자들과 통행차량 운전자들에게 양 옆으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하고 있다. 충무 운하교는 오늘도 늠름한 모습으로 미륵도 3만5000여 주민들의 생필품 운송수단은 물론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미륵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유일한 통로로 왜적들의 아픈 역사를 뒤로한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평세기자 hpse2000@gnnews.co.kr

 
충무운하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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