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경 (민주평통 경남부의장)
또다시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세찬 바람에 옷깃을 여밀며 지인들과 따스한 국밥을 나누며 복잡한 세상사, 실타래처럼 얽힌 우리네 인생살이를 풀어간다. 어떻게 먹어도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 같은 느낌, 같은 맛이기에 국밥은 소통하기에 더 없이 좋은 음식인 것 같다. 선조들은 인륜지대사인 결혼잔치에서 잔치국수와 함께 소고기국밥을 즐겨 먹었다. 그리고 이생을 하직하고 떠나면서 자신을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과 그간 부대끼며 함께 지내온 이들에게 고맙고 감사했다는 마지막 인사로 정겨운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하기도 했다.
긴 밤을 보내고 동이 트는 새벽에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국밥을 한 그릇 먹어 본다. 부추와 새우젓을 넣어 간과 맛을 맞춰 먹는 이 국밥을 대하며 새삼 우리시대의 통일을 그려 본다. 국밥은 먹는 사람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맞춰서 먹는데, 우리네 인간들의 기본적인 삶이라고 하는 의식주와 교육과 건강 그리고 죽음까지도 차별되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나게도 하지 않는 이 따뜻한 국밥처럼 몇 천원으로도 몸과 마음을 데우고 허기를 면해주는 이런 싸고 편한 국밥같은 세상을 더 깊이 생각해 본다. 나아가 이렇게도 따뜻하고 특별한 국밥같은 세상을 우리 다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분리와 분단이 아닌 화합과 통합으로 이뤄진 통일,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잘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통일, 그런 통일은 국밥의 속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즐길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잔칫집 마당의 국밥같은 화합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우리가 그간 통일에 너무 많은 조건을 달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동포애·형제애의 낮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국밥을 나누는 심정으로 함께하려는 노력들을 이제부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제주에서 몸국밥으로, 평양에서는 온반으로, 전라도에서는 콩나물 국밥으로, 경상에서는 돼지국밥으로, 그리고 뼈를 우려낸 해장국밥으로 몸과 마음을 데우고 허전한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시장표 패스트푸드’인 국밥 한 그릇을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평양에서 서로 나눠 먹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성제경 (민주평통 경남부의장)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