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그림이야기] 알테 피나코테크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알테 피나코테크
  • 강진성
  • 승인 2015.01.15 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①신화로 표현된 현재의 삶
현재 곤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김준식씨가 독일 뮌헨에 위치한 세계적 미술관인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를 방문해 직접 찍은 그림을 소개합니다. 그림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편집자주


 
얀 마뷰즈作 다나에(Danae.1527)
플랑드르 화풍의 대표작 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 1618
신화로 표현된 현재의 삶

동일한 지역에서 약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에 대한 이해를 회화로 표시함에 있어 그리스 신화의 모티브를 이용한 두 개의 그림이 있다. 첫 번 째 그림은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 일부지역) 출신으로서 본명이 얀 호사르트(Jan Gossaert)인 얀 마뷰즈(Jan Mabuse)가 그린 다나에(Danae·1527)이다.

가슴을 드러내 놓고 있는 다나에가 다소 에로틱하다. 聖과 俗의 이중적 알레고리가 깔려있는 이 그림의 주인공 ‘다나에’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묘사되었다.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다나에의 에로틱한 모습들은 종교적 금기의 경계선에 있는 매력적인 주제였다.

아르고스의 왕인 아크리시우스는 장차 태어날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고, 그로 인해 그의 딸 ‘다나에’는 결혼도 하기 전에 아버지의 명령으로 높은 탑 안에 갇혀 있게 된다.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부도덕한 일이 분명하지만 위대한 ‘신탁’ 앞에 혈육의 정은 사소한 감정이었던 모양이다. ‘다나에’의 미모에 홀린 바람둥이 제우스는 황금 소나기로 변하여 지붕 틈으로 스며든다. 황금 비는 감금된 공주의 무릎 위에 걸쳐진 천으로 떨어져 그녀를 수태시킨다. 이 결합으로부터 영웅 페르세우스가 태어난다.

다나에는 서양 미술사에서도 가장 에로틱한 주제에 속한다. 사랑 받는 사람, 굳게 닫혀 있던 여인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 그 ‘열림’의 순간을 그린 표상이다. 그런데 그 ‘열림’의 수단이 하필 ‘금’이다. 여성 비하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고대로부터 변하지 않고 계승되어 온 매매춘의 느낌 또한 강하게 느껴진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금본위제 통화 제도를 발달시켜 왔다. 금은 모든 사물의 가치 척도로 사용되어 왔던 만큼 순수함, 시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는 영원성 등 ‘순수 가치’ 그 자체를 나타낸다. 그런가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의 모든 요소, 즉 부패와 탐욕 그리고 몰락도 역시나 금은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본명이 얀 호사르트(Jan Gossaert)인 얀 마뷰즈(Jan Mabuse)는 16세기 벨기에 사람이다. 이탈리아에 그림을 공부하러 간 그는 ‘다 빈치’에 영감을 받았고 이 때문에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벨기에 플랑드르 회화에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은 신화를 기초로 한 종교화였는데 이 그림 ‘다나에’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다나에가 있는 공간은 높은 탑 위다. 주위의 풍광으로 아르고스 왕국의 왕궁이 보이며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밝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공간은 겨우 앉아 있기도 벅찬 좁은 공간이다. 마뷰즈는 황금 비로 변한 제우스가 내려오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화려한 코린트식 장식과 붉은 색 바탕에 흰 색의 무늬가 들어간 대리석 기둥들이 왕국의 화려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딸을 가둔 비정한 아버지가 다스리는 왕국의 모습은 어쩐지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많은 화가들이 이 ‘다나에’를 그렸고 그들이 그린 ‘다나에’의 모습은 당연히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다나에’에 대한 해석도 성모에 대한 영감으로부터 세속 요부의 이미지까지 폭 넓은 가치 기준을 제시한다. 즉, 황금비를 매우 세속적인 해석인 돈 벼락으로 묘사한 그림에서부터 또 기독교적으로 마리아의 수태고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 그림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100년쯤 세월이 흐르고 르네상스의 영향이 전 유럽에 널리 퍼진 후 역시 이 지역 출신으로서 플랑드르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인 Peter Paul Rubens가 그린 Raub der Tochter des Leukippos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1618)가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네 명뿐이지만 화면은 놀란 여성들의 팔과 다리의 움직임, 울부짖는 말들의 다리와 갈기, 그리고 벌린 입에서 흐르는 타액, 여성들을 말에 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근육질 남성의 번쩍이는 갑옷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모두 큰 원으로 묶을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원 구도의 모범적인 그림으로서, 루벤스는 이 작품에서 그의 회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빛’을 이용한 찬란하고 풍부한 색채를 선보이고 있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의 상류 가정 출신이다. 그는 1577년, 법률가였던 부친 얀 루벤스(Jan Rubens)가 개신교 신앙에 대한 박해를 피해 이주했던 독일의 지겐(Siegen)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사망한 1587년에 안트베르펜으로 되돌아왔다. 이곳에서 루벤스는 형 필립과 함께 라틴어 학교에서 고전 교육을 받으며 가톨릭교도로 자랐다. 1600년에 그는 자신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준 8년 간의 긴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른다.

이탈리아 곳곳에 있는 르네상스의 유산을 직접 보고 연구한 결과, 위대한 대가들의 예술에 감동한 루벤스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이탈리아에서 곧 명성을 얻었다. 특히 그는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의 영향을 깊게 받았는데, 그의 그림 속의 ‘광선’에 대한 영감은 카라바조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온 다음 해인 1609년 알베르토 대공의 궁정화가가 된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는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에 근거한 주제로, 레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가 레우키포스의 두 딸 힐라이라와 포이베을 납치해서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루벤스 특유의 인체 표현이다. 루벤스 예술의 주제가 인간의 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성별, 나이,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피부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알았다. 이 작품에서도 구릿빛 남성 피부와 투명한 여성의 피부는 서로 대조되어 보는 사람들에게 매우 강렬함을 준다.

하지만 오늘 날의 시각으로 보면 루벤스의 그림 속 인물들의 묘사는 과도한 면이 없지 않다. 그가 그린 남자는 근육이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고, 여자는 너무 살이 쪘으며, 화면은 지나치게 번쩍이고, 강렬한 색채는 눈이 피곤할 정도로 화려하다. 그의 작품 속 모든 것은 실물보다 크고 현실보다 강력하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반 종교 개혁 시대의 가톨릭 교도였다. 당시 유럽 전역에 밀어닥쳤던 종교개혁의 열풍은 독일에서 발흥하여 벨기에를 휩쓸고 있었는데, 루벤스는 벨기에의 기득권층으로서 엄격한 가톨릭 신자였다. 따라서 가톨릭의 신성함과 위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표현이 바로 그림에서의 여러 가지 강조로 나타난 것이다. 더 크고 더 강렬하게 인물들을 묘사하고 색채를 나타냄으로써 종교개혁의 바람에 맞서 가톨릭의 위엄을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다.

/곤양고등학교 교사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피나코테크]
 
▲ 김준식 곤양고등학교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