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29)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29)
  • 경남일보
  • 승인 2015.01.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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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수필가 청계 양태석 화백 이야기(5)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29)

<90>수필가 청계 양태석 화백 이야기(5)

 

양태석 화백은 <풍곡 성재휴 선생의 애주와 해학>을 썼는데, 그 이야기를 요약해 본다.

풍곡 성재휴 작가는 191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20대에 석재 서병오 문하에서 문인화와 산수화를 공부했다. 용묵의 기초를 익히고 두루 그림세계를 섭렵하여 ‘야운’이라는 호를 쓰면서 열정을 쏟았다. 1934년 의재 허백련 문하에 들어가면서 ‘운당’이라는 호를 쓰기 시작했다. 작품세계가 더 넓어지면서 자호를 ‘풍곡’으로 지어 썼다. 3년을 배우고 나니 스승의 그림보다는 자기 스스로 새로운 필법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귀가하게 되었다.

풍곡은 1938년 23세에 이미 충무공 영정을 제작하여 화제가 되었다. 경남 지방에서 부산, 마산, 진주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진주 의곡사에 머물면서 결혼과 동시에 본격적인 화업을 펼쳐나갔다. 특히 진주에서의 활약이 그중 으뜸이었다. 의곡사 주지를 지낸 청남 오제봉의 주선으로 진양강씨 가문의 학교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규수에게 장가를 들었고 소정 변관식, 운전 허민, 효당 최범술, 파성 설창수 등 지방의 명사들과 교우하면서 화명을 높여나갔다. 천성적으로 산수화를 잘 그려서 주문이 쇄도했으나 성격에 맞지 않을 때는 붓을 들지 않았다.

진주에서 6.25를 만났지만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용이하지 않았다. 진주에 살 때 재미 있는 일화가 많다. 소정 변관식이 진주에서 거주하면서 술을 좋아하다 보니 선후배 관계보다도 술친구로 자주 어울렸다. 그때는 통행금지가 있어서 한 잔 두 잔 하다보면 통금 시간을 어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루는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강남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은 남강교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막 건너려는데 순경이 통금시간이 지나 사람들을 잡아 놓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풍곡은 옆길로 슬슬 기었다. 그때 순경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거기 서시오’했다. 풍곡은 대뜸 ‘나는 개다. 개도 통행금지가 있나?’ 하면서 지나가니 순경도 어이가 없어 웃고 통과를 시켜 주었다. 겨우 남강교를 건넜으나 역전파출소를 지나야 했다. 같은 수를 쓰자니 재미가 없어 망설이던 중 거지가 깡통을 들고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그때 ‘이놈아 깡통 좀 빌리자. 너는 깡통이 없어도 거지가 분명하니 내가 좀 들어야겠다.’하고 부탁하니 두말없이 깡통을 빌려 주었다. 풍곡은 깡통을 들고 거지와 어깨동무를 하고 육자배기를 부르며 역전파출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6.25전쟁에 인민군이 밀려오는 바람에 진주 생활이 위험에 처해졌다. 지인의 알선으로 간단히 짐을 꾸려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초량 산위의 판자촌에 겨우 방 한 간을 얻었다. 극심한 생활난을 겪으면서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매일 술을 마실 수가 있었다. 하루는 술에 취해서 초량의 술집 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홀 안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미군 장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풍곡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홀로 들어가 힘껏 육자배기를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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