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30)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30)
  • 경남일보
  • 승인 2015.02.0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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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수필가 청계 양태석 화백의 이야기(6)
지난 번에 이어 양태석 화백이 말하는 풍곡 성재휴 화백 이야기를 계속한다. 부산에 간 풍곡의 이야기다. 술에 잔뜩 취해 초량의 술집지대를 지나던 그는 미군 장교들이 춤 추고 있는 술집 홀을 들어가 두루마기 차림으로 육자배기를 불러댔다. 이를 보던 미군장교가 통역가를 시켜 무엇하는 사람이기에 여기서 고함을 지르느냐고 물었다. 풍곡은 “나는 유명한 화가라고 여쭈어라.”고 했다. 미군 장교는 화가라는 말에 귀가 쏠려 만나자고 했다. 통성명을 하고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고 하자 엄지 손가락을 펴보이며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표시했다.

예술가를 대우해주는 미군장교라 주소를 알려주며 그림을 한 장 그려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풍곡은 정성껏 그린 그림 한 점을 가지고 그 장교를 찾아갔다.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했다.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장교의 아버지는 뉴욕에서 화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림을 부쳤다. 한 달쯤 지나서 풍곡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장교를 찾아갔더니 장교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장교는 자기 아버지께서 그림 주문과 동시에 선금을 보내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표 한 장과 그림 20점 주문서가 동봉되어 있었다.

영어로 된 수표라 돈의 액수도 모르고 외환은행에서 수표를 제시하고 현금으로 찾겠다고 했다. 은행원이 돈을 담을 수 있는 포대를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담당 은행원이 돈을 담을 수 있는 포대를 구해서 한화를 포대에 가득 담아 주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전쟁 중이라 화폐 가치가 없었고 미국은 세계최고의 부국이라 돈의 가치는 엄청난 차이가 났었다.

풍곡은 기분이 좋아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판잣집 작은 방에 액수조차 알 수 없는 큰 돈 포대를 풀어놓았다. 그때 풍곡의 장모도 같이 있었다. 장모는 “ 이 사람아 우리가 아직은 먹고 살 수가 있으니 이 돈을 훔친 곳에다 돌려 주고 오게.”하면서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도둑질을 해서야 쓰것능가.”하고 걱정이 태산 같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림 선금으로 받은 돈으로 서울 수복후 서대문에 있는 춘양목으로 지은 아담한 한옥을 구입했고 후일 돈을 모아 연희동 저택을 구입하고도 서대문 집을 팔지 않았다.

풍곡은 두주를 불사하고 매일 마시는 애주가로 이름이 높았다. 해가 서산에 걸리고 출출해지는 시간이면 언제나 인사동에서 마주앙으로 1차를 시작했다. 거나하게 기분이 좋아지면 2차는 신촌으로 건너간다. 가는 곳마다 단골이 정해져서 주문이 없이도 술상이 나왔다. “술이란 적게 마시면 약이 되고 많이 마시면 독이 된다.”하면서도 한 잔 두 잔에 포만해지는 몸이 되었다.

어느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인 무학재 고개를 넘어가는 길가에 술꾼이 소주병을 들고 마시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술이 남았나?”하고 물으니 “그래 남았다.”“그럼 나도 한 잔 주게.”했다. 술병을 건네받은 풍곡은 병을 들고 두 번을 마셨다. 그사람은 한 번만 마시지 왜 두 번을 마시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이 사람아. 처음 먹은 것은 술이고 두 번째 먹은 것은 안주 아닌가”하고 농담을 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고개를 신나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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