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그림이야기] 화면을 지배하는 빛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화면을 지배하는 빛
  • 경남일보
  • 승인 2015.01.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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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빛의 화가들 카라바제스키
▲ Gerrit van Honthrost Der verlorene 1622

 

중세 종교화의 특징은 모든 화면이 동일하게 밝고 엄숙하다. 특히 예수나 성모의 광배(Halo) 주위에서 뻗쳐 나오는 밝은 빛은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그 빛은 화면 구석구석까지 비춘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은 예수나 성모를 중심으로 좌·우로 도열해있거나 아니면 상하로 대각선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순간 그 그림의 주제를 쉽게 파악 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이런 형식은 매우 자유로워지는데 인물의 성격과 인물의 배치까지 비교적 형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화면에서 예수나 성모의 모습은 사라지거나 중요하지 않고 대신 특정 방향에서 빛을 비춤으로써 예수나 성모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빛을 회화에 처음 사용하면서 르네상스의 분위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화가가 바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다. 카라바지오는 16세기에서 17세기의 전환기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바로크 회화(르네상스 이후의 서양회화의 주류)의 개척자다. 그가 창조해낸 카라바지오 양식(Caravaggism)은 그의 대표작 성 마태를 부르심(The Calling of Saint Matthew, 1599-1600)에서 잘 나타난다. 화면에는 예수나 성모는 존재하지 않지만 예수나 성모를 짐작할 수 있는 빛이 창문 넘어 가득 비친다. 이 빛은 그 뒤 회화에 널리 준용되어 화면을 지배하는 빛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빛의 사용을 주요한 화가들을 일반적으로 카라바제스키라고 하고 이들 중 네덜란드의 일파를 특별히 유트레히트파라 부른다.

그 유트레히트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이 Gerrit van Honthrost 인데 그가 그린 “방탕한 이들 (Der verlorene) 1622”이다. 교외의 허름한 유곽에서 세 쌍의 남녀와 한 명의 노파가 모여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다. 화면에 대각선으로 누워 있는 남자의 옷이 등불에 푸르게 비치고 있다. 그 남자의 종아리에는 매듭이 묶여져 있는데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 군인들 복장이 이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남자들의 모자도 예사롭지 않다. 근위병들이 쓰는 깃털 모자에 가깝다. 아마도 근무를 마친 군인들이 근처 술집에서 아가씨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도 카라바조의 절대적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 ‘빛’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다. 화면의 거의 중앙에 있는 큰 촛불과 그 촛불을 가리고 있는 남자의 술잔에서 산란된 빛이 방 전체를 환하게 비추지만 그 광선은 확산성이 높지는 않다. 사람들 모습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카라바조의 영향이다. 카라바조의 “성 마테를 부르심” 에서 처럼 화면에 한 줄기 빛이 비치고 그 빛은 전체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 것이 바로 ‘카라바조의 빛’이다.

유트레히트 화파의 대표적 화가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Gerrit van Honthorst)는 네덜란드의 화가인데 유트레히트 화파란 17세기 초,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를 중심으로 활약한 일군의 화가들을 말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지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교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가톨릭을 신봉했고 동시에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이들을 ‘카라바제스키’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혼트호르스트는 그 ‘카라바제스키’ 최초의 인물이다. 그도 이탈리아에서 10년간 유학을 다녀왔고 그의 모든 작품에서 카라바조의 영향을 표현하고 있다.

빛에 의해 두드러지는 인물의 부분과 빛에 의해 사라져버린 배경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조화롭게 구성된 이 그림은 가톨릭의 성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없고 남녀의 자세가 매우 자유로운 모습이며, 지나치게 세속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는 당시의 분위기로 볼 때 거의 혁명적 그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초엽, 아직은 중세의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그 무렵에 성스러운 성화 대신에 민중의 삶에 눈을 돌려 이 그림을 그린 혼트호르스트의 용기에 가까운 독창성은 이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카라바지오의 이런 빛의 사용은 이미 카라바지오 이전에도 존재하였는데 카라바지오가 태어나기 70년전, 빛의 사용에 있어 카라바지오의 빛을 예견할 만한 그림이 있다. Jacopo de Barbari라는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이 그림은 카라바지오의 빛이 어느 날 문득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보면 꿩 과에 속하는 자고새 한 마리가 쇠로 만들어진 장갑과 함께 화살에 사선으로 꿰여 벽에 걸려 있다. 죽은 새의 모습이나 장갑의 묘사는 사진 만큼이나 정교하고 섬세하다. 특히 중세 기사들이 전투할 때나 사냥할 때 착용했던 벙어리 장갑(Chavlier Mitten)에 반사되는 빛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장갑의 금속성을 절묘하게 부각시켰다. 이 빛에 대한 영감은 그 뒤 카라바조에 의해 계승되어 회화의 표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오기도 한다.

 

▲ Jacopo de Barbari, Stillleben mit Rebhuhn und Eisenhandschuhen 1504


야코프 데 바르바리(바르히)(Jacopo de Barbari)가 그린 “철 장갑과 자고새가 있는 정물(Stillleben mit Rebhuhn und Eisenhandschuhen 1504)”을 그린 시기는 1504년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정물화로서는 거의 초기의 작품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르바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로서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 베니스였지만 죽은 곳은 네덜란드이다. 그의 이런 행적으로 보아 그는 이탈리아 북부, 즉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에 이탈리아 회화를 전파시킨 주요 인물일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물화라는 단어는 아마도 일본식 조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정물화의 본래 이름, 즉 독일식 표현은 Stillleben인데 그 뜻은 ‘조용하다’, 혹은 ‘정지하다’의 still과 생명체를 뜻하는 leben의 합성어이다. 하지만 그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한 때는 생명이 있었으나 지금은 생명이 없는 존재를 그리고 있는데 우리의 전통 회화에서는 그런 종류의 그림이 없던 탓에 아마도 우리에게 근대 미술교육을 시작한 일본이 그들의 방식으로 만든 단어가 바로 정물화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정물화는 서양 회화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의 한 부분으로서 물건들은 대개 실내의 특정 공간 혹은 테이블 위에 정렬되어 그려져 있는데, 작가의 의도에 따라 아주 다양한 정물들이 이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빌럼 헤다(Willem Claesz Heda)’의 그림에 등장하는 해골이나 나침반 등의 정물들은 삶과 시간에 대한 작가의 가벼운 권고로부터 깊이 있는 철학적 반성에 이르는 메시지까지도 숨어 있다.

자고새의 목 부위를 관통한 화살을 그대로 두고, 장갑과 함께 화면을 구성한 것은 전체적으로 종적 이미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 세심한 주의로 보인다. 그것도 완전한 수평보다는 장갑 쪽으로 약간 쳐진 화살을 그림으로써 죽은 자고새 보다 상대적으로 부피가 작은 장갑 쪽으로 시선을 분산시켜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물화의 역동성은 없지만 삶의 과정과 그 사이로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정물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사색과 더불어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적 태도 마저 가지게 한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마치 그림 속에 그림처럼 메모지를 그려 넣은 것은 그 뒤 여러 화가들에게 계승되었는데 그런 양식의 그림을 트롱프뢰유(trompe-l‘œil)라고 부른다. 트롱프뢰유의 본래 의미는 ’눈속임, 착각을 일으킴‘이란 뜻으로 ’속임수 그림‘이라 번역할 수 있다.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피나코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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