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행복한 설을 위한 간소한 상차림
[경일포럼]행복한 설을 위한 간소한 상차림
  • 경남일보
  • 승인 2015.02.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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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만 (환경부 차관)
다가오는 음력 1월 1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다. 설빔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세배와 덕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윷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 전통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설날 음식도 빠질 수 없다. 설 떡국과 정성을 다해 준비한 차례음식은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설날은 이렇게 즐거워야 하건만,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과도한 명절음식 마련은 주부에게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며, 주부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기도 한다.

입구가 좁은 유리병에 들어있는 사탕을 욕심껏 먹고자 손에 가득 쥐면 사탕을 먹을 수가 없다. 그 상태로는 유리병에서 주먹을 빼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심리를 이용해 원숭이를 사로잡는 사냥법이 있다. 욕심 때문에 주먹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원숭이를 붙잡는다는 이야기다. 우리 또한 명절이면 으레 욕심을 부려 사탕을 한 가득 쥔 원숭이처럼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힘껏 음식을 장만해 다 소화하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늘리는 부작용을 겪고 있으면서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노동량에 따라 끼니를 달리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식사를 하며 효율적인 식생활을 추구했다. 낮이 긴 여름에는 3끼를 먹고, 낮이 짧은 겨울에는 2끼를 먹는가 하면 충분한 힘이 필요한 농번기에는 새참을 추가로 먹는 식이었다. 또한 먹고 남은 음식물을 가축 먹이로 재이용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활용했다. 가령 쌀뜨물은 찌개나 숭늉을 끓이는 데 사용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기름기를 없애는 용도로 활용한 것이다. 버려지는 음식물은 극히 적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직까지도 음식을 풍족하게 차려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인식이 남아 있다. 어쩌다 손님을 접대할 때면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하면서 동시에 다 먹지 못해 남은 음식을 처리하느라 수고를 들인다. 아이러니다. 이 결과 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약 460만t에 달하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 중에 “밥 한 그릇에서 만사를 안다(食一碗萬事知)”는 말이 있다. 밥 한 그릇이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태양, 비바람, 대지, 볍씨, 농부의 피와 땀 등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함께 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쌀(米) 한 톨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八十八) 번 닿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라만상의 결정체인 우리 앞의 밥알 한 알갱이를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소홀히 여겼는가.

우리 마음 속 욕망의 바구니는 우주와 같아 가득히 채우고자 해도 채울 수 없다. 소유와 만족감을 향한 갈구는 도리어 탐욕과 집착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가져다주기 쉽다. 과거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가.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인 초전법륜경에 따르면 욕망이나 고행을 떠나 중도(中道)를 깨달아야 궁극적 행복인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본디 필요한 만큼만 욕구하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꾸려야 할 것이다.

설은 반가운 친척들을 만나 맛깔스러운 명절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가족 간의 화목을 다지는 기회다. 이번 설에는 간소한 명절상을 차림으로써 몸은 편안하고 마음은 여유로운 행복한 명절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음식물 쓰레기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라 소소익선(少少益善)임을 가슴에 새기며 말이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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