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그림이야기] ‘Still Life’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Still Life’
  • 경남일보
  • 승인 2015.02.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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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삶과 시간이 흐르는 정물화
정물화(靜物畵)로 번역된 영어 ‘Still Life’의 Still은 품사에 따라 그 뜻이 매우 다양하지만 명사로서는 ‘고요’, ‘정적’, ‘침묵’으로 번역된다. Life는 생명, 삶, 생물체 또는 물체로 번역되는데 종합해보면 Still Life의 물체란 생명을 가졌으나 지금은 없어진 상태이거나 처음부터 생명이 없었던 물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어 ‘Stillleben’도 거의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양회화의 정물화가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은 그림 속의 여러 가지 사물을 통해 시간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시간의 경과, 그리고 심지어 삶의 깊이까지를 정물을 통해 묘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법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지금의 벨기에)의 회화로부터 출발한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Dutch(네덜란드)와 Flemish(벨기에 지역)의 지역 화가들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정물화가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의 정물화의 뜻은 이전의 것과 조금은 달라진 의미로 쓰이게 된다. 즉, 영어 Still Life의 의미가 네덜란드어 Stilleven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의 뜻은 ‘죽은 자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회화를 통해 표현하려는 세계가 지향하는 바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페테르 클라스(Pieter Claesz 1597~1660)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1620년 네덜란드로 이주해 그곳에서 여생 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가 유행했고 그 중에서도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을 그린 그림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정물화들은 ‘아침 식사 그림’(ontbijtjes; ‘온베찌스’ 네덜란드어로 ‘아침 식사’)이라고 부르는데, 페테르 클라스는 빌럼 클라스 헤다(Willem Claesz Heda)와 함께 네덜란드 회화의 새로운 양식으로 부상한 ‘아침 식사 그림’을 발전시켰다.

‘주전자가 있는 정물(Stilleben mit Kanne, 1635)’에서 모든 사물은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즉 불그레한 고기 빛이 선명한 학세(Haxe)는 ‘현재의 시간’이다. 클라스가 즐겨 사용하는 색은 무채색인 회색과 짙은 갈색, 그리고 흰색인데 이 그림에서 유채색으로 표현된 것은 고기와 빵뿐이다. 따라서 유채색 사물은 ‘현재의 삶’이다. 빵 밑에 불안하게 위치한 쟁반 역시 ‘불안한 현재의 표상’이다.

 
페테르클라스(Pieter Claesz)의 주전자가 있는 정물(Stilleben mit Kanne, 1635)
넘어진 두 개의 컵은 ‘과거의 삶’이다. 언젠가 바로 서 있었을 두 개의 컵은 그 상태로부터 출발하여 지금 우리에게 넘어짐으로 보여지는 ‘시간의 경과’인 셈이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은 유리 컵 속의 액체와 말려 올라간 식탁보는 ‘미래의 암시’다. 언젠가는 비워질 음료와 누군가에 의해 손질 될 식탁보는 ‘미래에 대한 작가의 의지’이거나 또는 ‘기대’일 수 있다.

이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혼란스러운 사물의 배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려 올라 간 식탁보의 어지러움을 저그(주전자)가 보완하고 있고 학세의 다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것을 국자의 손잡이 장식이 식탁보 밑으로 내려 오면서 화면은 상하 조화를 이룬다. 두 개의 컵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넘어 짐으로서 역시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전체 그림을 조화롭게 하고 있다.

주석으로 만든 주전자( jug, 독일어로는 Kanne)에 비치는 부드러운 빛의 반사와 뒤 편으로 이어지는 짙은 그림자, 그리고 주전자 주위를 둘러 싼 공기의 느낌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 시기 작가들의 공통적 해석에 의한 회화적 표현이다. 이 그림 전체에 산란되는 빛은 카라바지오의 회화사적 공헌으로서 정물화에 인용된 빛이다. 여전히 그의 빛이 이 시기의 회화를 지배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20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이 지역(네덜란드) 출신의 위대한 화가가 그린 또 다른 정물화가 있다. 이전 세대의 정물화에 놓여있던 그 많던 상징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해바라기 꽃만 가득한 화병만 화면에 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Sonnenblumen - Sun Flower 1888)가 그것이다.

해바라기 여러 송이가 화병에 꽂혀져 있는 모습을 고흐 특유의 임페스토 기법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19세기 유럽 정물화의 일반적 모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의 정물화는 꽃이 그려지더라도 대부분 한 송이 혹은 꽃과 다른 물건이 혼재되어 있고 그 중 꽃이 돋보이는 구조이거나 과일들과 그릇, 혹은 화병들과 잔들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고흐의 ‘해바라기’는 해바라기만을 화병에 가득 담아 놓고 있으며 각 해바라기 꽃의 상태(개화의 정도, 씨앗의 숙성과 꽃잎의 퇴락)를 통해 시간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고흐 이전 회화의 꽃보다는 매우 직설적이다.

 
고흐(Gogh)의 해바라기(Sonnenblumen,1888)

이러한 사물의 표현 방법은 당시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일본의 ‘우끼요에’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끼요예’란 17세기경 일본 에도 시대의 하류층에서 발흥한 세속화를 일컫는데 한자로 표기하면 ‘浮世繪(부세회)’라고 쓴다. 귀족들의 삶과는 달리 곤고했던 일본 하류층의 삶을 달래주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그림이 바로 ‘우끼요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우끼요에’의 일부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초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고 유럽의 일부 호사가들에게 수집되면서 여러 화가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의 유럽 화가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게 된다. 그 충격으로 인상파 회화가 발흥했다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당시의 서양세계에 우끼요예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고흐의 정신이 가끔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그가 죽기 2년 전) 그려진 이 해바라기는 노란색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배경을 연한 하늘색으로 한 것도 노란 해바라기를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신분열증의 고흐에게는 노란색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같은 해 그려진 ‘아를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에도 노란색이 지배적인 것은 그의 정신 상태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고흐는 작품에서 해바라기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수직적인 효과를 극대화 한다. 그리고 수평적 이미지에도 주의를 기울여 이 그림을 완성했다. 즉, 작은 해바라기 한 송이를 사선으로 늘어뜨려 놓은 것이 그것인데 이것은 클라스의 정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 회화에 내재되어 있는 조화와 균형의 정신에서 기인한 것이다.

 

/곤양고등학교 교사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피나코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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