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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발길 닿는 대로 (64)신흥사를 찾아서봄마중 나선 절집, 세월 탓하며 흐려져가는 옛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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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24  22: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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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사 전경

잊지는 말아야 할 몸서리쳤던 지난날을 기억의 외진 곳에 깊숙하게 묻어두고 어차피 잊고 살아야 할 오늘이라서 내일을 바라보며 바동거려야 할 나날이 빼곡한 을미년 새 달력을 밥상머리에서 빤하게 보이는 벽에 걸었더니 커다란 글자가 요령방울처럼 또록또록해서 새로운 변화에 새봄이 서둘러 찾아온 것 같아서 밥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짚이는 곳이 있어 집을 나섰다.

남녘의 봄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낙동강변의 양지쪽인 원동의 순매원으로 아직은 이르겠지만 선이라도 보고 싶고, 신흥사로 찾아들어 천년고찰 보물인 대광전과 벽화를 신년벽두에 친견하고 싶어서 반기며 부르기라도 하듯이 망설임도 없이 차를 몰아 삼랑진에 닿았다. 옛날 같았으면 진주에서 기차를 타고 원동역까지 ‘칙칙폭폭’ 석탄연기 내품으며 귀청이 뚫어지라 냅다 지르는 기적소리와 ‘오징어가 왔어요. 땅콩이 왔어요.’ 하던 갱생원들의 톤이 낮은 목신소리가 정겨웠으련만, 요새도 무궁화호 열차는 원동역에 서지만 주변과의 교통편이 불편하여 차를 몰아서 동창원IC를 나와 삼랑진을 벗어나서 원동으로 행했다.

삼랑진 중심가를 막 벗어나자 작원관지라는 황토색 표지판이 있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강둑길을 접어들자 이내 단청을 곱게 입힌 자그마한 2층 문루가 낙동강변의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단아하게 앉았다. 신작로도 없던 당시로는 천인단애의 낙동강 벼랑에다 홈을 파서 시렁가래로 선반을 걸치듯이 장목을 걸치기도하고 석축과 석주를 쌓고 세워 아찔한 벼랑길을 내어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의 지름길이었으니 낙동강의 옛 이름인 황산강의 옛길로서 황산잔도에서 작원관으로 이어진다하여 작원잔도라고 불리었던 벼랑을 돌아 나오면 길목을 가로막은 요새 같은 지형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관리들의 숙소와 일반인의 검문검색을 겸하는 관이 있었으니 오가는 이들로 북적대던 곳이었다.

성각의 문루와도 흡사한 출입문은 아치형의 대문으로 출입의 유일한 통로이고 2층의 누각은 난간을 두른 망루이자 지휘나 통제소의 역할을 하는 넉넉한 마루청으로 꽤나 널따랗다. 단청이 화려한 문루에 올라서자 드넓은 낙동강의 푸른 물이 망망대해와 흡사하고 지금은 경부선철도가 벼랑의 끝자락을 뚫고 터널의 출입구가 되어 눈 깜작 할 새 KTX열차가 총알같이 튀어 나와 쏜살같이 사라지는가하면 무궁화호 열차와 화물열차가 강바람을 가르며는 신바람 나게 오가는데 낙동강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광에 홀려 황홀경에 젖어든다.

 

   
▲ 원동의 낙동강


사흘밤낮을 쉬지 않고 넘어야할 토곡산과 천태산 준령 말고는 이길밖에 없었으니 동서의 관문이요 남북의 통로였으니 오가는 이들의 애환인들 오죽 하였으랴. 술이 달린 관모 쓰고 육모방망이 허리춤에 찼으니 딴에는 관속이랍시고 검문하던 나졸들의 거드름인들 오죽 하였겠나. 어디 미곡오곡 초근목피 피륙만이 오갔으랴. 시집가고 장가가던 신행길의 길목이고 오일장의 보부상도 끊임없이 오갔으며 판돈 떨어진 투전꾼도 야반도주 했겠지만 벼슬자리 사겠다고 나귀등에 엽전 싣고 새벽길을 재촉하던 바쁜 이도 없었겠냐만, 눈 한번 감아주는 장님흉내 닷 량이고 돌아서서 한눈팔면 열 냥 받던 세상사라 하였으니 세상사요지경이 어제오늘 이야기일까만 낙동강 푸른 물은 보란 듯이 소리 없이 아래로만 흘러간다.

둔덕에 선 비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 기의 석비는 세월에 빛이 바래 음양각의 선이 흐려 판독이 어려운데 안내판의 간략한 내용은 임진왜란 당시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작원관지에서 양산을 거쳐 침범해 들어오던 일만팔천여명의 소서행장의 왜적을 막기 위해 군관민 300명으로 방어선을 구축하여 열흘간을 결사 항전하였으나 중과부족으로 장렬하게 최후를 함께 한 격전지로서 숭고한 호국의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현장이란다.

비각의 위로 높이 솟은 위령비 앞에 서니, 유유히 흐르는 역사의 강, 설움이 북받쳐 일렁였던 강, 애달픈 사연에 가슴을 저렸던 강, 호국의 피로 물든 통한의 강. 울분에 눈물 젖은 한 많은 강, 민족의 애환을 함께하며 출렁거렸던 낙동강! 쇠락한 국력의 통절함이 한이 되어 허리띠 다시매고 기어이 출렁이며 새 역사를 이어가는 낙동강은 흘러간다. 위령비 앞에 술 한 잔 올렸으면 더없이 좋으련만 옷매무새 고쳐서 예를 가름하고 천태산 굽이진 준령을 향해 차를 몰았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몇 굽이를 돌아서 끊임없이 오르는데 간이 찻집이 주차장을 마련하고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쉬어가라 반긴다. 빨갛게 달궈진 난로 가에 다가앉아 종이컵을 움켜지고 굽이굽이 오른 길을 내려다보니 온갖 옛 생각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옛 생각을 많이 하면 인정이 넘쳐나고 앞 만보고 내달리면 야욕에 정복된다. 방물장사 밥 먹여서 아랫목에 잠재웠던 그 세월이 요새라면 끔직한 사건사고 일어날리 만무하고 너와 내가 마나면 우리가 되었던 흘러간 그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지나는 길이면 들리마고 작별하고 가던 길을 재촉하여 신흥사로 가는 길과 원동역으로 가는 갈림길에 닿았다.

우선 가까운 원동역으로 향했다 원동역과 한데 어우러진 순매원은 아직은 이른 때라 그저 고즈넉한 과수원 속의 외딴집에 불과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매화가지는 볼통볼통한 자줏빛

꽃망울이 부풀고 있었다. 매향 그윽하게 만개하면 다시 오마 기약하고 왔던 길을 돌아서 신흥사를 향해 차를 몰았다 불과 8Km 남짓한 영포마을 들머리에 신흥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길마중을 나와 섰다. 작은 도랑을 따라 골짜기로 접어들자 우뚝한 일주문이 화려한 단청으로 길손을 반기는데 일주문을 지나자 대궐 같은 절집의 전각들이 빼곡하게 골을 메웠다. 첫눈에는 여느 절집과는 다를 게 없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을 등지고 화려한 단청을 입힌 근작의 전각들이 서로를 마주하거나 추녀를 맞댔는데 ‘대광전’이라는 커다란 편액이 붙은 고색창연한 맞배지붕의 목조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위압적인 크기도 아니면서 웅장하고, 투박한 듯 정교하여 옛 멋이 넘치는데, 우람하지도 않으면서 육중한 듯 장엄하고, 목침을 쌓은 뜻한 공포의 짜임새가 세월의 흔적까지 중후하고 멋스러워 보는 이의 넋을 뺀다. 불력이 아니고서야 장인의 솜씬들 이토록 조화로울 수가 있을까하고 법당참배는 뒷전이고 대광전 사면을 둘러보느라 넋을 놓았다. 방풍벽 안쪽의 외벽에는 불보살의 벽화가 빈틈없이 그려졌건만 거미줄을 걷어내던 대빗질의 흔적인지 세월의 흔적인지 탈색으로 흐릿해서 참으로 안타깝다. 대광전과 내벽의 벽화도 보물로 지정되어 보물 제1120호와 1757호라는데 뒷면의 벽에도 세 개의 문이 달린 것으로 보아 법당안의 후불벽 뒤에도 불보살이 모셔진 게 분명하다싶어 법당으로 들어섰다. 비로자나 본존불에 예를 갖추니 약사삼존도와 아미타삼존도가 동서의 벽면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사방의 벽면마다 화방에도 창방에도 불보살의 벽화가 빈틈없이 빼곡하고 우물 천정과 대주와 평주를 가리지 않고 불보살의 벽화여서 사면과 천정에서 불력의 가피가 쏟아지듯 충만감이 전신을 감싼다. 닳고 닳은 바닥의 마루청은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선지 걸음마다 삐걱거려 까치발로 조심을 다해 후불벽면으로 돌아들자 천정 높이까지 닿는 커다란 관음보살삼존도가 비천상의 옷깃을 하늘거리며 연방이라도 하늘 높이 나를 것만 같은데 사바세계를 향해 자비의 미소를 살포시 지으시며 굽어보고 계셨다. 임진년 전란의 화마도 차마 범하지 못한 대광전은 향불의 연기가 천상으로 오르는데 국태민안 발원하고 중생 발복 기원하는 주지 영규스님의 독경소리는 속세로 여울진다.

 

   
▲ 작원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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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j0091
장님은 장애비하용어입니다. 올바른 용어를 사용해주세요. 장님의 권장용어는 시각장애인입니다.
(2015-03-27 0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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