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화재 여행] 함양 남계서원
[경남 문화재 여행] 함양 남계서원
  • 박성민
  • 승인 2015.02.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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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자 정여창선생 추모위해 건립
남계서원은 조선 초기 성리학자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추모하기 위해 1552년 개암 강익을 비롯한 지방 유생들이 건립했다. 사진은 남계서원 정문 밖에서 본 모습. 저멀리 서원 입구인 풍영루가 보이고 있다.



어수선했다. 곳곳에는 흙먼지가 가득해 목이 따끔거렸고 황토바닥에는 중장비차량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서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른 세상이 열렸다. 고즈넉한 마당에 아름드리 나무와 고풍스러운 서원의 분위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정갈한 현판과 강당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책을 펼쳐야 할 것만 같았다.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함양 남계서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헐리지 않은 이곳을 찾아 옛 성현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세계유산으로 뻗어가는 남계서원

남계서원은 조선 초기 성리학자이자 동방 5현(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중 한명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추모하기 위해 1552년 개암 강익(姜翼 )을 비롯 지방 유생들이 건립했다.

소수서원이 건립되고 9년 뒤 1552년에 개암 강익과 함양 유림들의 주도로 이뤄졌는데 향내의 유생들이 쌀과 곡식을 부조하면서 건립을 위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이어 당시 함양군수였던 서구연이 강당 건립을 위한 물자와 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서 군수의 부친상으로 잠시 지원이 끊기면서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공사를 재개한지 7년 만인 1559년 완성됐다. 1561년 모든 시설들을 갖추고 일두 정여창의 위폐를 봉인하면서 39세의 나이였던 강익이 초대원장이 됐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서원이다. 1566년 명종 임금에게 ‘남계’라는 사액을 받고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얻었다. 출입문인 풍영루와 강당, 동재, 서재, 경판고, 사당 등으로 구성돼 있고 급한 경사지에 사당을 제일 높은 곳에 두고 출입문까지 일직선상을 배치했는데 이는 전학후묘(서원·향교의 배치법으로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뒤쪽에 묘당을 배치한 것)의 배치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이후 각 지역에 건립된 서원은 대부분 이런 배치 형식을 따르게 됐다. 남계서원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돼 시련을 맞기도 했으나 1612년 현재 자리에 다시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적 제499호인 남계서원은 현재 함양군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추진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교육기관으로 정착하게 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함양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함양군 남계서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등재하기 위해 이미 신청서를 제출하고 계속해서 추진 중에 있다”며 “올해 혹은 내년에 실사를 받은 뒤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계서원에서 성리학을 논했던 강학공간은 명성당이라고 불렀다. 강학영역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로 1559년에 완성됐다.사진은 현재 명성당의 모습.
남계서원 앞마당에는 묘정비가 우뚝 서있다. 강학공간이 명성당을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있다. 사진은 남계서원 전체공간의 모습으로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은 정여창 사상의 ‘중심’

먼저 서원입구의 풍영루(風永樓)2층 누마루에 오르면 남계서원 일곽을 조망할 수 있다. 풍영루에는 유교사상을 알게 하는 내용이 단청으로 표현돼 있다.

강당 앞마당에 서있는 묘정비가 우뚝 서있다. 서원이 건립된지 200년이 지난 뒤 조선 후기 문관 김종후가 송덕비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다 1779년 비를 세우고 글을 새기면서 만들어졌다.

남계서원에서 성리학을 논했던 강학공간은 명성당(明誠堂)이라고 불렀다. 이는 중용의 ‘참된 것을 밝히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니, 참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참되게 된다’라는 뜻이다. 강학영역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로 1559년에 완성됐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구성돼 있고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 각 1칸은 온돌방이다. 오른쪽 방은 거경(居敬)이라하면 ‘경에서 거해서 이를 기이 연구한다’는 뜻이다. 왼쪽방은 집의(集義)라고 하는데 ‘호연지기는 도와 짝이 되는 의를 축적해야 하는 생기는 것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당 앞 좌우에는 동재인 양정재(養正齋)와 서재인 보인재(輔仁齋)가 서 있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2칸 규모의 건물인데, 각 1칸은 온돌방이다.

강학공간 뒤를 돌아가면 경판고(經板庫)가 세워져 있다. 경판고는 장판각이라고도 하는데 서원에서 보유하는 책이나 판각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유생들을 교육한 어정오경(御定五經,)등 서적이 이곳에 있었지만 현재는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 중이다.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건물을 지면에 붙이지 않고 4면을 모두 터놓아 공기의 유통이 자유롭게 하여 판각을 보관하기 쉽도록 했다. 외부벽체는 나무로 구성한 판벽으로 되어 있고 내부 역시 가운데 판벽이 있다.

정여창선생의 18대 종손인 정명균씨는 “남계서원이 위치한 함양 땅은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을 배출해내어 학문과 문벌에서 손꼽히던 고을이다”며 “특히 남계서원은 정여창 선생을 모신 전국 9개의 서원 중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전했다.
박성민기자 smworld17@gnnews.co.kr


 
남계서원 앞마당에는 묘정비가 우뚝 서있다. 강학공간이 명성당을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있다. 사진은 남계서원 전체공간의 모습으로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은 풍영루를 지나 명성당으로 가는길. 앞마당 왼쪽으로 묘정비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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