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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12>비계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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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26  22: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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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래서 본 비계산 암릉.




“정상에 다 오른 것 같다.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 “뭐라고요? 하늘이 파랗기는 노랗게 보이는구먼.”

동료 산우는 파란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된비알에 힘이 많이 들어 불만을 터트리는 것이다.

실제 비계산은 그런 산이다. 고도 1200m 높이에 급격한 경사도를 자랑해 정상에 다다를 즈음에는 파란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다.

그러나 이날 정상부근에서는 나뭇가지에 빗물이 달라붙어 얼어버린 보기 드문 자연현상까지 일어나 신비감을 더해줬다. 나무에 핀 얼음 꽃은 햇빛을 받아 순백· 순수의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한 빛을 발했다.

얼음 꽃은 상고대와 약간 다른 생성과정을 거치는데 습도가 높고 바람이 없는 추운 날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백색을 띠는 상고대와는 달리 유리알처럼 투명한 것이 특징이다.

이 산의 자랑거리인 정상부의 풍혈주변에서는 얼음 꽃이 상고대로 바뀌어 마치 보석으로 치장한 숲속 같았다. 이 길을 걸을 때는 황홀경이었다. 이를테면 이 풍경은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힘드는 산행을 끝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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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핀 얼음꽃


▲비계산은 닭이 날개를 펴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가야면의 경계에 있으며 연장해서 마장재 우두산(별유산)수도산으로 수도지맥을 이룬 뒤 곧 백두대간 대덕산에 합류한다. 대덕산 기준으로 북에 민주지산, 남에 지난 111회차에 다녀온 삼봉산이다.

▲등산코스는 도리보건진료소 화곡마을→거창휴게소(고서방향)→일각사→소나무숲→돌탑봉 갈림길→마장재 갈림길→풍혈→구름다리→거창 비계산→합천 비계산→도리·산제치 갈림길→대학동→도리입구→화곡마을. 7km에 휴식 포함 5시간 소요.

▲오전 9시 40분, 도리보건진료소 화곡마을에서 오른다. 마을길을 따라 공사 중인 88고속도로 아래 통로를 지난 뒤 도로 옆을 따라가면 거창휴게소(고서방향)가 나온다. 휴게소 옆 철망으로 된 문을 나서면 비계산 등산로 초입이다.

시멘트길 끝에 일각사가 보이고 100m 못 미친 지점에서 산으로 안내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비계산 정상 2.9km를 가리킨다.

풀 섶을 헤치고 마른계곡을 건너 산 능성이에 올라서면 마사토에 소나무가 삐죽삐죽 서 있다. 처음에는 완만한 오솔길이 이어져 오르기가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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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딱따구리.


청딱따구리 2마리가 깨 깩 거리며 기묘한 동선으로 횃대를 친다. 벌써 봄인가. 시절을 의심하게 하는 작은 산새소리까지 화음을 맞춘다. 모처럼 사람을 만난 산새들이 ‘한번 놀아보자’며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향기에 끌려 시선이 머문 곳은 죽은 가지를 많이 달고 있는 소나무 숲. 요즘 산에 죽은 나무들이 지천이지만 40여년 전에는 죽은 나무가 별로 없었다.

시골에선 춥고 긴 겨울을 날 수 있는 소중한 땔감이었기에 마을사람들이 산으로 몰려들어 이런 나무들을 베어왔다. 죽은 나무가 동이 나면 바닥에 깔린 갈비를 긁었다. 이마저도 사라지면 살아 있는 나무를 베었다. 물거리로 불리는 나뭇짐은 이듬해 땔감으로 요긴했다.

완만하던 산세는 어느 순간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 스틱에 의지해도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출발 1시간 20분 만에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능선에 올라선다. 이정표는 왼쪽 돌탑 0.4km, 상수월 3.7km, 오른쪽 비계산은 1.1km가리킨다. 비계산 돌탑코스는 바위와 미끄러운 낙엽과 눈이 쌓여 있어 위험하다.

돌탑길을 뒤로하고 비계산으로 향한다. ‘후두둑~’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에서 얼음덩이가 떨어진다. 햇살이 들면서 가지에 붙었던 얼음이 녹아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뒷덜미 속으로 들어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여기서부터 정상부까지 바위와 육산이 교차하는 능선구간이다. 능선 길은 지금까지 힘들게 올랐던 것과는 다르게 산책하는 기분이다. 눈길이어서 미끄러운 것만 빼면 힘들지 않을 뿐더러 주변의 풍광까지 눈에 들어온다. 깊은 산속에서 누리는 호사다.

정오, 마장재로 가는 길림 길을 만난다. 마장재를 통해 우두봉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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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와 얼음꽃으로 뒤덮인 비계산 정상의 풍혈 부근 절경. 무채색의 수묵화 같은 느낌이다.


암릉과 암릉이 연결돼 있는 경사진 나무계단을 통과하면 정면에 비범한 산세가 나타난다. 그곳에 백색의 얼음 꽃이 피어 있다. 그야말로 숨 막히는 풍광, 한 폭의 수묵화다. 남쪽 사면에는 얼음 꽃이 녹기 시작했지만 깎아지른 북벽에는 햇살이 미치지 않아 밤새 피운 상고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간다. 얼음과 상고대의 터널을 지나면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정갈해지는 느낌이다.

그 속에 앉아 취향대로 얼음을 깨물어 보고 눈을 뭉치고 셀카 촬영도 해본다.

그림 같은 풍경을 넘어서면 이 산이 자랑하는 비계풍혈. 깊이 20m굴로 지인봉 부근에 있다. 가조고을에 큰바람이 불어올 기미가 있으면 이틀 전부터 이 굴에서 바람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 소리가 가조현까지 들렸는데 날씨예보기능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비계산 바람굴이라고 불렀다.

낮 12시 30분, 풍혈을 건너면 비계산 정상이다. 해발 1136m를 가리키는 정상석은 2008년 거창군이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또 하나의 정상석이 나온다. 비계산을 한자로 새겼고 해발은 1125m, 합천군 숭산비운산악회가 세운 것으로 돼 있다. 비계산의 실제 높이는 1130m이다.

지나온 돌탑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신의 산 우두산(별유산), 해인사 지킴이 매화·가야산, 철쭉의 성지 황매산, 가야할 비계산을 비롯해 멀리 마지막 한국표범의 고향 오도산, 미녀봉과 보해산이 병풍처럼 에둘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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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숨막히는 오름길.


휴식 후 하산 길에 접어들면 안부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도리방향으로 꺾이는 길은 1.5km, 산제치 방향은 직진 3.4km이다.

오후 1시 50분, 도리방향은 여지없는 내리막길이다. 경사가 심해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는 구간이다. 낙엽 아래 숨어 있는 얼음도 복병이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

이 산에서는 너덜 길도 만날 수 있다. 등산로에는 없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광활한 바위가 널린 너덜겅이 나온다. 휴식하거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다.

소나무 잣나무가 나올 때 쯤이면 경사가 완만해진다. 오후 2시 45분, 밀양박씨 산소와 대학동 붉은소나무 안내판을 지나면 도리마을로 가는 아스팔트로와 마주친다. 껍질이 등거북을 닮아 신령스럽다는 400년짜리 대학동적송은 찾지 못했다.

도리와 대학동 등 이 일대를 옛날에는 홍강계로 불렀다. 15세기 중엽 환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이 제자를 가르칠 때 대학동이라고 불렀다. 환훤당과 일두가 강학했다는 수포대가 양지담 마을 위 산재미계곡에 있다. 두무산과 오도산 지류가 만나 예쁜계곡을 만드는 곳이다. 인근 모현정은 이들을 기려 세운 정자, 경남문화재 자료 346호이다.

조선 초 성리학자 김굉필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소학에 통달해 소학동자로 불렸다. 1498년 무오사화 때 평안도에 유배됐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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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 숲으로 향 는 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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