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화재 여행] 함양 정여창 일두고택
[경남 문화재 여행] 함양 정여창 일두고택
  • 박성민
  • 승인 2015.03.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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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 안에 깃든 선비의 고고한 기품
일두고택에 있는 함양 개평마을은 정여창 의 하동정씨를 비롯 풍천 노씨, 초계 정씨 등 3개의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특히 일두고택을 비롯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사진은 마을 동산에 올라 마을 전경을 내려다 본 모습.


“남계서원에 이르서 재숙하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서 사당에 배알하였다. 물러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 현인들 가운데 오직 이분만이 거의 흠이 없는 분일 것”이라고 하였다. <남명 연보>

“일찍이 선정(先正) 정공(鄭公) 휘 여창(汝昌)선생의 풍도를 들었지만, 제가 문견이 부족하여 그 상세한 것을 알지 못해 마음에 부끄럽고 허전합니다. 그 저술과 비지와 행장을 갖고 계신다면 바라건대 잠시 빌려 읽게 하여 이 무지하고 답답한 심정을 풀 수 있게 해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퇴계집>

남명선생과 퇴계선생은 일두 정여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성리학의 거목으로 추앙받는 두 학자가 이처럼 높이 평가했던 정여창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두고택에 들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사랑채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물론 대학자 정여창선생의 선비다운 기품이 엿보이는 듯 하다.
일두고택의 사랑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물이 있는 마당을 지닌 안채가 나온다. 이곳은 1987년 KBS대하드라마 토지의 최참판댁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 정여창은 누구인가

일찍이 성종은 정여창의 사직 상소에 “너의 행실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행실을 감출 수 없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이것이 너의 선행이다”라고 사임을 허하지 않았다.

정여창(1450~1504)은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로 함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독서에 힘쓰다 김굉필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다. 관직에 나간 이후 성리학의 대가로서 저술 뿐 아니라 1495년 현감에 임명되서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고 법령을 만들어 시행한 지 1년 만에 정치가 맑아졌다는 백성들의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 화를 입었는데 당시 사초에 기록된 내용을 제대로 고하지 않았다고 해 유배길에 올랐다. 1504년에 사망한 뒤에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했다.


사관 김일손은 그를 “그는 도(道)가 하늘과 사람에 통하고 학문이 체와 용을 갖추었으며 성정이 고요하고 기질은 단정하다. 몸가짐은 깨끗하고 고난에도 안주하며, 사물을 어질게 대한다”고 기록했다. 임금과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그였지만 그는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일두’라는 호에서 드러난다. ‘한 마리 좀벌레’라는 뜻을 지닌 그의 호에서 겸손함 행실이 엿보인다. 정여창은 ‘용학주소’, ‘주객문답설’, ‘진수잡저’ 등의 저서가 있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때 부인이 태워 없애 그 유집 일부가 ‘정문헌공실기(鄭文獻公實記)’속에 전해지고 있다.


 

일두고택 정문에 있는 솟을대문. 이곳에는 5개의 충신 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


◇ 양반마을의 중심 ‘일두고택’

일두 정여창의 고택으로 가는길엔 거대한 노송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을에는 기와지붕을 한 옛 고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일두고택에 있는 함양 개평마을은 정여창 의 하동정씨를 비롯 풍천 노씨, 초계 정씨 등 3개의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특히 일두고택을 비롯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선조들이 풍류를 즐겼던 교수정(문화재 자료 제 76호)과 명상 장소로 유명한 개평리소나무군락지(경남도 기념물 제254호)등이 있어 민속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일두 정여창 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로 현재 가옥은 그가 죽은 후 선조 무렵 1570년대에 건축된 것이다.

1만㎡(3000평)정도의 넓은 집터에는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 총 11개 동의 건물로 그 중 사랑채는 18세기 개축됐다. 조선시대의 빼어난 건축물로 1984년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2013년 문화관광부로부터 ‘명품 고택’ 선정돼 사랑채, 안사랑채 및 행랑채를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또 이곳은 1987년 KBS대하드라마 토지의 최참판댁, 2003년 MBC 다모의 어린 채옥의 생가 촬영지로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등장한다. 고택에 투숙하는 일반인은 비치된 있는 전통 혼례복과 남녀 한복, 도포 체험도 해 볼 수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솟을대문은 5개의 충신 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 이 집은 공간구획 배치가 가장 최적화 돼 있는데 세간 살림살이들이 비교적 옛스러운 대로 제자리에 보존돼 당시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박성민기자 smworld17@gnnews.co.kr



 
함양 개평마을에 진입에 일두고택으로 가는길. 길 양쪽으로 정겨운 돌담이 쌓여져 있고 커다란 노송이 관광객들을 반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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