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정치는 과연 허업(虛業)인가
[경일시론]정치는 과연 허업(虛業)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15.03.0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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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불후의 명작은 시공을 초월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미적 갈증을 충족해주는 예술품이든 정서적 포만감을 주는 문학작품이든 감미롭고 웅장한 음악이든 촌철살인의 잠언이든 마찬가지이다. 수천 년을 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요즘도 명작을 보고 감상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하고 순례한다. 악보로 전해지는 음악은 지금도 연주되고, 좋은 문학작품은 우리생활의 귀감이 되고, 본받고 싶은 로망이 된다. 정서적 안정과 정신세계의 풍요로 안식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정치인의 명언도 그러하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나 처칠의 회고록을 통한 2차 대전 당시의 각종 언행은 유명하다. 최근 소이부답(笑而不答)을 미덕으로 삼아오던 노 정객의 조문정치가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심에 서서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 김종필 전 총리의 맞춤형 충고였고, 천격화되고 갈피를 못 찾아 우왕좌왕하는 정계에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허투루 듣기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어 과연 정치9단에 걸맞은 노 정객의 내공이 돋보였다.

‘정치는 남는 게 있어야 한다’, ‘ 정치인이 과실을 따먹으려 하면 교도소로 가기 십상이다’, ‘국회의원은 거리에서가 아닌 국회에서 싸우고, 싸울 땐 싸우더라도 가끔 만나 술밥을 함께하며 교류해야 한다’는 말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미운 사람 죽는 것보고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죽는 것이 최후의 승자이다’는 말에 이르면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그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죽으면서 선사한 조문정치는 정치원로가 필요하다는 귀한 교훈을 남기기도 했다. 덕담으로 위로하면서도 부족함을 지적하고 나아갈 바를 제시해준 구순의 정객이 실세 정치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다.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남는 말은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것이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 정치의 정점에 있었던 이회창 전 총리도 지나간 정치인 시절을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고 했다. 여름날 술에 취해 낮잠을 자다 꾼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 또한 듣는 사람들이 소이부답할 일일까.

조선 인조시절의 영의정 이원익은 정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은퇴 후 비가 새는 흙집에 바람이 문풍지를 넘나들고 벽지가 누렇게 바랜 초라한 집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를 귀향길에 보낸 광해군을 죽이자는 조정대신들을 뒤로 물리치고 귀향 보내 천수를 다하게 한 것도 허업을 안 그의 혜안이었다. 정치는 청렴을 덕목으로 하는 걸 일찍이 보여준 것이며, 김종필 전 총리는 이런 이원익의 철학을 요즘 정객들에게 들려준 것이다. 노 정객의 정치는 허업이라는 일갈은 후회를 남기지 말고 정치를 잘하라는 말의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 이회창 전 총리의 남가일몽 또한 성공한 정치이든 실패한 정치이든 지나놓고 보면 잠시 꿈속에서 즐기고 누린 허망한 영화에 불과하다는 그의 경험을 웅변으로 말한 것이 아닐까.

이제 곧 청문회 정국이 시작된다. 또다시 끝없는 폭로와 당리당략에 얽매인 억지논리가 난무할 것을 생각하면 암담해진다. 이번 청문회부터라도 노 정객이 던져준 교훈을 거울삼아 민생을 염두에 둔 제대로 된 청문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허업이 아니고 남가일몽이 아닌 국민과 국가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기대하는 것이다. 어차피 ‘고작 70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산정무한). 정치도 시공을 초월하는 불후의 명작이 될 수 있다. 영원히 인구에 회자되는….

[경일시론]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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