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국 (경남도의회 원내부대표)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축복이다. 좋은 스승 또한 참된 제자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투영하고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공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학교 관련 사건들을 보면 스승과 제자가 아닌 선생과 학생이라는 건조한 이분법적 구조와 입시에 모든 것이 함몰돼 있는 것 같다. 학교가 지식쌓기와 문제풀이 훈련으로 점수만 높여 대학에만 가면 되는 성냥갑 공장으로 변형돼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회복의 치유책을 찾을 것인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으로 전 미국이 절망에 빠졌을 때 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정치가 루스벨트도 아닌 명마 ‘씨비스킷(Seabiscuit)’이었다. 하지만 원래 이 말은 몸집이 작고 다리도 구부정해 경주마로서는 최악의 체형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천성이 게을러 몇 시간씩 드러눕기는 예사였다. 비정한 주인들로부터 많이 얻어맞아 성격도 포악했다. 이를 세계적인 명마로 탈바꿈시킨 사람들은 공교롭게 이 씨비스킷처럼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재산을 모두 탕진한 마주, 한물 간 카우보이 조련사, 삼류 권투선수 출신으로 한쪽 눈을 실명해 마구간에서 거주하던 기수 등이다.
이들이 어떻게 씨비스킷을 세계 최고의 명마로 바꿀 수 있었을까. 그것은 ‘상대에 대한 믿음과 다름에 대한 이해’였다. 그들은 씨비스킷이 영특한 머리와 맹렬한 스피드, 불굴의 투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발휘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억지로 달리기훈련을 시키는 대신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동기를 부여했고, 말을 안 듣고 저항해도 채찍을 드는 대신 토닥거리고 간식을 주었다. 또한 다른 말보다 일부러 미리 출발시켜 1등을 유도함으로써 성공의 쾌감을 맛보게 하는 훈련도 실시했다.
이같이 그들이 깊이 이해하고 끝까지 믿어주자 씨비스킷은 숨은 재능의 빛을 서서히 드러내고 경주마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씨비스킷이 떳다 하면 경마장 주변도로가 마비되고 숙소와 식당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1936년부터 1941년 사이에 89전 33승, 13개 경주의 거리별 신기록 달성 등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한낱 미물인 말조차 믿음과 이해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대한 적이 있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35년 간의 정든 교단생활을 떠나며 남긴 어느 참 스승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잘못 다스렸던 부끄러움이 책장을 펼치다 보면 문득 잡힐 듯 떠오른다. 첫째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쉽게 풀어 주었는가. 또 모른 것은 모른다고 이해를 구하고 성실히 익혀서 곧장 일러 주었던가. 한편 어려운 환경으로 외롭게 지내는 제자를 찾아 뜨겁게 안아 주었는가. 또한 성적으로 부질없는 차별화는 없었던가. 굽이굽이 부끄럽기는 해도 다시 업으로 주어진다면 더욱 ‘참삶’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세월따라 다정한 얼굴들이 별처럼 떠오르면 청마(靑馬)의 시와 함께 나란히 동무하리라.’
1930년대 경제 대공황으로 전 미국이 절망에 빠졌을 때 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정치가 루스벨트도 아닌 명마 ‘씨비스킷(Seabiscuit)’이었다. 하지만 원래 이 말은 몸집이 작고 다리도 구부정해 경주마로서는 최악의 체형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천성이 게을러 몇 시간씩 드러눕기는 예사였다. 비정한 주인들로부터 많이 얻어맞아 성격도 포악했다. 이를 세계적인 명마로 탈바꿈시킨 사람들은 공교롭게 이 씨비스킷처럼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재산을 모두 탕진한 마주, 한물 간 카우보이 조련사, 삼류 권투선수 출신으로 한쪽 눈을 실명해 마구간에서 거주하던 기수 등이다.
이들이 어떻게 씨비스킷을 세계 최고의 명마로 바꿀 수 있었을까. 그것은 ‘상대에 대한 믿음과 다름에 대한 이해’였다. 그들은 씨비스킷이 영특한 머리와 맹렬한 스피드, 불굴의 투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발휘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억지로 달리기훈련을 시키는 대신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동기를 부여했고, 말을 안 듣고 저항해도 채찍을 드는 대신 토닥거리고 간식을 주었다. 또한 다른 말보다 일부러 미리 출발시켜 1등을 유도함으로써 성공의 쾌감을 맛보게 하는 훈련도 실시했다.
이같이 그들이 깊이 이해하고 끝까지 믿어주자 씨비스킷은 숨은 재능의 빛을 서서히 드러내고 경주마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씨비스킷이 떳다 하면 경마장 주변도로가 마비되고 숙소와 식당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1936년부터 1941년 사이에 89전 33승, 13개 경주의 거리별 신기록 달성 등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한낱 미물인 말조차 믿음과 이해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대한 적이 있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35년 간의 정든 교단생활을 떠나며 남긴 어느 참 스승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잘못 다스렸던 부끄러움이 책장을 펼치다 보면 문득 잡힐 듯 떠오른다. 첫째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쉽게 풀어 주었는가. 또 모른 것은 모른다고 이해를 구하고 성실히 익혀서 곧장 일러 주었던가. 한편 어려운 환경으로 외롭게 지내는 제자를 찾아 뜨겁게 안아 주었는가. 또한 성적으로 부질없는 차별화는 없었던가. 굽이굽이 부끄럽기는 해도 다시 업으로 주어진다면 더욱 ‘참삶’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세월따라 다정한 얼굴들이 별처럼 떠오르면 청마(靑馬)의 시와 함께 나란히 동무하리라.’
[의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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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를 이끌고 갈 교육자들에게 참 스승이 될 수 있는 좋은 내용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교육에 많은 관심과 좋은 글 올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