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과도’를 든 망상(妄想)의 테러
[경일시론]‘과도’를 든 망상(妄想)의 테러
  • 경남일보
  • 승인 2015.03.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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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한국국제대학교)
김기종 씨는 ‘어제 과일을 깎아 먹던 과도로 그랬어’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이 저지른 테러를 대했다. 그가 한 행위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떳떳해하기도 했다. 부끄럼이 없는 그의 태도는 ‘자신이 희생을 해가면서 전쟁훈련을 막고자 해서 한 행동’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것이다. 저지른 행동도 무언가 자신과 마주 선 세상에 대해 병적으로 잘못 확신에 사로잡혀 저지른 테러이다.

이번 미국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는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테러사건은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과 함께 새로운 종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SNS는 ‘미국대사 다쳤다고 벌벌 떠는…노예근성’이라는 한심한 견해를 밝혀 사회적 건강성까지 염려하게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했고, 빠른 회복에 기뻐하는 민심을 보여 안심이 된다.

물론 망상(妄想)에 사로잡힌 테러리스트인 그가 활동하는 시민단체에 책임을 묻고, 그 배후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그런 테러리스트가 시민단체를 이끌어 가고, 사건 후에 ‘전쟁광인 미국에 가해진 정의의 칼’을 휘두른 영웅으로 부추겨 내부갈등을 조장하는 북한의 전략을 단절시키는 일과 같은 것이다.

‘칼 융’은 어린애 같은 유치함과 소영웅주의는 양 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동일한 형식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자는 무의식적으로 열등감이 커 그것을 상쇄하려는 망상 때문에 솟구쳐 오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때로는 괴물이 되어 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괴물이 되어 버린 자는 여전히 유아적 자아 속에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는 엄청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세상의 구원자라고 들뜬다. 하지만 막상 구원의 길에 나서면 세상은 그를 몰라줄까 두려워 극단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김씨는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정신병적 인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전에도 그는 일본대사에게 벽돌을 던지고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정당화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내가 살해하고자 했다면 벽돌을 던졌겠느냐고 사회를 향해 반문한다. 이번에도 그는 과일 깎는데 사용했던 과도로는 대사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변명한다. 그런 그의 말들은 마치 방언이나 헛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빈약하고 미숙한 자아는 현실에서 생긴 구체적인 상황들과 단절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전쟁을 막는 평화수호자라고 믿는다. 그가 한 공포를 유발하는 극단적 테러행위는 자기만족적 범죄에 다름없다. 그런 평화 수호자라 여기는 자기만족적 테러리스트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나서 분리하지 않으면 단절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망상에 사로잡힌 자를 시민단체의 리더로 오판한 잘못이 있다. 어찌됐든 국회의원들은 그가 허망된 자기 논리를 설명하도록 국회 세미나실을 빌려 주는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와 인연을 맺어 왔던 시민운동가들도 정신질환이 있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라고 뒤에서 수군대면서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지 못했다. 한술 더 떠서 북한은 이번 사건을 남녘 민심이 반영된 안중근 의사의 봉기라고 불온하게 이용한다. 이러한 오판 속에는 그를 미숙한 어린아이 같은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정신이상자를 분간 못하는 미성숙함이 있었다. 우리에게 혹시 그가 우리 편이라서 폭력을 눈감아 주려는 진영논리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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