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범접하기 어려운 화강암벽과 아기자기한 능선, 삼단폭포와 할멈바위, 문화재의 보고 영국사와 2기의 삼층석탑 등이 허투루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천년의 은행나무, 설악산과 닮은 흔들바위까지 있다. 그래서 규모가 작을 뿐 설악의 비경에 견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533호)은 신라 후기,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535호)은 고려중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목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는 국내 최고령인 용문사 은행나무와 쌍벽을 이룬다. 본목에서 갈라진 나뭇가지가 땅으로 내려와 다시 자란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과 금산군 제원면에 걸쳐 있는 해발 715m의 산이다. 과거 천태산의 본산이었다는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천태산은 산 아래서 바라보면 그리 높은 산이 아니어서 다소 실망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높이 76m에 달하는 수직 화강암벽과 맞닥뜨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 암벽은 로프에 의지한 채 오롯이 팔과 다리의 힘으로 올라야 한다. 오름길에 이런 곳이 3개가 있다.
하산길에서는 오를 때와는 달리 위험하지 않아 풍광을 즐기며 편안한 산행을 할 수 있다.
▲등산코스는 영국사 기준으로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A B C D, 4개 코스가 있다. 취재팀은 미륵길로 불리는 A코스로 올라 정상에 닿은 뒤 왼쪽 남고개가 있는 D코스로 하산했다. 관음길로 불리는 B코스는 최근 폐쇄됐다. 휴식포함 5시간 20분 소요.
▲오전 9시 30분, 천태산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넓은 주차장엔 먹을거리와 토산품을 파는 가게가 둘 있다.
계곡을 따라 산에 들어 ‘충북 설악 천태산’ 표지석을 지나 몇 발치 앞에서 갈림길이다. 왼쪽은 하산길로 잡은 D코스, 취재팀은 오른쪽 A코스로 향한다.
시루떡처럼 생긴 삼신할멈바위 아래를 지나 삼단폭포에 닿는다. 옛 이름은 용추폭포, 겨울철 수량이 적은 것이 흠이지만 수목이 우거진 여름철 이 계곡은 등산객의 심신을 달래주는 산소 같은 쉼터다.
그 앞에 늙은 느릅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는 가지와 뿌리에서 붉은 점액이 나오는데 달여 먹거나 즙을 내 먹으면 비염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비염효과 때문인지 코처럼 흐르는 점액 때문인지 코나무로 불린다. 다른 한약재와 혼합하거나 과용은 좋을 리 없다.
된비알 고개를 넘어 일주문에 올라서면 광활한 터가 눈앞에 펼쳐진다. 먼저 늙은 은행나무가 보이고 그 뒤로 영국사 절집, 좌우로 개활지, 멀리 천태산의 실루엣이 다가온다.
일주문 옆에서 입장료 1인 1000원을 받는데 문화재관람료인지 사유지여서인지 알 수 없어 생뚱맞다.
이 세상에 1000년을 사는 생명이 몇 있을까. 높이 30m, 둘레 11m짜리 은행나무 앞에 서면 머리가 조아려지고 겸손해지기까지 한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무 앞을 거쳐 갔을까. 얼마나 많은 기원들이 이곳에 머물렀으며 그 기도와 소망들은 이루어졌을까. 살아 있는 신, 은행나무가 옛사람들의 흔적과 이 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서쪽의 큰가지가 다시 땅에 닿아 새끼은행나무와 한 몸이 돼 자란다. 국난 때에 소리 내어 운다는 전설이 있다.
삼층석탑과 대웅전이 보물이다. 석탑 앞에 깨달음의 상징 보리수 한그루가 서 있다. 깨닫지 않는 백구는 드러누운 채 고개만 돌린다.
절집을 돌아 나와 오른쪽 길을 따른다. 솔숲에 세워진 철제박스에 등산안내도가 비치돼 있다. 배상우라는 인적이 적혀 있는데 그는 영국사 신도회장으로 등산로를 개설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정성과 수고가 읽혀진다.
오전 10시 30분, 이제부터 육산은 끝나고 두 세개의 화강암 전망대가 나온다. 이 산의 진면목이 시작되는 징조다.
첫번째 암릉은 비교적 오르기가 수월하다. 슬랩(바위의 벌어진 틈)과 릿지(등성이)가 교차하는 구간으로 로프 등 안전시설을 활용해 주의해서 오르면 큰 위험은 없다.
두번째 암릉이 문제다. 그야말로 76m짜리 숨 막히는 수직 암벽이 앞을 가로 막는다. 크랙과 릿지 슬랩이 연이어진다.
노약자는 우회 길을 이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별 무리 없이 느껴지지만 20여m정도 오르면 팔과 다리에 힘이 쭉쭉 빠진다.
카메라와 배낭을 맨 채 손으로 로프를 붙잡고 다리를 암벽에 뻗친 뒤 대롱대롱 매달려 오롯이 팔 힘을 이용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이 수축 이완하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릿지구간을 오르면 중간에 휴식공간이 있다.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휴식처다. 스틱과 카메라는 아예 배낭에 넣는 것이 좋다. 세번째 암벽은 두번째에 비해 수월하지만 끝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오전 11시 20분, 능선에 도착한다. 암릉을 벗어난 지점으로 잡목과 서나무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천태산 정상은 오른쪽에 약간 벗어나 있다. 정상 조망은 서쪽에 서대산, 남쪽에 성주산과 멀리 덕유산 계룡산 속리산이 보인다. 하산은 정상석을 되돌아 나와 남쪽 주능선을 따르면 된다.
낮 12시 10분, 헬기장에서 벗어난 언덕에서 휴식한 뒤 오후 1시 10분, C코스 정상에 선다. 폐쇄되지는 않았지만 코스가 짧고 볼거리가 신통치 않다.
대신 D코스가 압권이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화강암 더미와 바위절벽 등 절경이 감탄사를 유도한다. C코스로 내려가 버렸다면 후회 막심할 코스다.
부부로 보이는 산행객은 전망 좋은 바위 끝에 서서 멀리 펼쳐지는 산과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자리를 뜰줄 몰랐다. 맞은편 산기슭에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석장은 눈엣가시다.
남고개를 넘어 오후 2시께 산행 안내리본이 건구줄(금줄)처럼 주렁주렁 달린 길을 고불고불 따라간다.
영국사와 다시 만나고 일주문 앞 갈림길. 오전에 올라왔던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을 택한다. 계곡 건너 언덕바지에 망탑봉이다. 천태산을 온전히 볼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이곳에는 또 하나의 문화재 삼층석탑이 있다.
다른 탑과는 달리 기단을 따로 만들지 않고 자연석을 기단처럼 깎은 뒤 그 위에 탑을 얹었다. 자연과 탑이 일체가 되게 한 조각가의 참신한 아이디어다. 경주 남산의 유명탑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이런 형식을 갖고 있다.
그 옆에 고래 혹은 상어를 닮은 바위는 설악산 흔들바위처럼 흔들린다. 진주폭포를 지나 원점 주차장에 닿았을 때 오후 2시 50분을 가리켰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