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65)천성산 가는 길에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65)천성산 가는 길에
  • 경남일보
  • 승인 2015.03.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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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축 위에 올라선 임경대서 옛 사람을 돌아본다
매섭게 날을 세우던 바람결의 뒤끝이 어느새 순하고 부드러워지더니 아침환기를 위해 창을 열자 향긋한 듯 야릇한 흙냄새가 봄나들이를 부추기는 바람에 들썩거려지는 엉덩이를 몇 번이고 누르면서 행선지를 잡느라고 한참의 고민 끝에 길을 나섰다. 봄이 오는 길목을 따라 봄 마중이나 할 요량으로 삼랑진을 거쳐 원동을 지나는 양산의 천성산 가는 길로 길머리를 잡았다.

고속도로 양산IC를 이용하면 천성산이 코앞이지만, 굳이 삼랑진을 경유하는 까닭은 봄이 오는 낙동강의 풍광도 즐기면서 아련한 옛 세월을 더듬고 싶어서다. 옛 시절엔 누구나 애잔하게 가슴 저리던 삼랑진역에 닿았다. 왜식건물은 헐어지고 현대식 건물의 정갈한 대합실이 왠지 낯이 설지만 자판기 종이컵의 온기를 감싸 쥐니 하염없는 옛 생각이 속절없이 젖어온다. 떠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떠나갔던 플랫폼, 기적도 목이 매여 울고 떠난 삼랑진. 이제는 긴긴 세월의 뒤안길을 돌아서 KTX를 타고 와 플랫폼을 나올 것만 같은 그리움만 젖어든다.

 
순매원 전경
새금한 추억의 맛에 눈시울이 지긋한데 삼랑진역을 뒤로하고 천태산 굽이진 길을 굽이굽이 돌고 넘어 원동으로 접어들자, 아니나 다를까 비탈 밭엔 매화가 만발하고 순매원을 찾은 탐매객들이 전망대를 빼곡히 메웠는데, 낙동강 강변 따라 오고가는 기차는 매향을 나르느라 강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리고, 지천으로 피어난 백매화의 틈새에는 선홍빛 홍매화가 간간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이 별천지를 이뤘다.

매향에 젖은 오지랖을 여미고 가던 길을 재촉해 굽이진 강변길을 감돌아서 가노라니, 산과 산은 병풍이고 강촌은 그림같고, 정겨움이 넘쳐나는 풍광에 매료돼 세상사 뒤로한 채 신선 같은 객이 되니, 마음이 앞장서서 길 안내가 바빠졌다. 1Km 남짓한 거리에 오봉산 자락을 낙동강에 드리우고 성벽같이 높다란 석축 위로 작은 망루같은 정자가 길손을 붙잡는데 안내판이 나서면서 날 좀 보고 가라 한다. 양산팔경 중의 ‘임경대’란다. 통일신라시대의 정자로서 ‘고운대’ 또는 ‘최공대’ 라고도 하는데, 낙동강의 옛 이름인 황산강 서쪽 절벽 위에 자리 잡았다며 절벽의 석벽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시가 새겨져 있으나 오랜 세월로 조감하기 어렵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선생의 시가 전한다고 일러준다.

낙락장송이 우거진 솔숲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서자, 길은 나무데크를 깔아서 벼랑 위의 정자로 이어졌는데, 2층 누각의 정자는 단청도 하지 않은 근작이지만, 낙동강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선경이요 비경이다. ‘대동여지도’의 해석서인 ‘대동지지’ 에서는 황산역 서쪽 황산강변에 임경대가 있다는 기록이 있고, 양산시지에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돌을 직접 쌓아서 만들었다 했으며, 고문헌에는 경상좌도의 최고의 명승지로서 관동의 ‘사선정’에 비길 만한 기상이 있다고 했다니, 고운 선생의 풍모를 연상하며 정자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니, 호연지기의 기상이 가슴 벅차게 충만해 백구처럼 날 것 같아 신선같은 기분이다.

 
임경대와 낙동강
임경대를 뒤로하고 오봉산 자락을 돌아 양산시가지로 접어들자 ‘박제상 유적 효충사’ 의 안내판이 길손을 인도 한다. 양산천을 거슬러 오르면서 양산IC 건너편에 이르자 단청이 화려한 높다란 사당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끼고 작은 공원이 말쑥하게 조성됐다. 박제상 유적 ‘효충사’ 라는 안내판이 경상남도 기념물 60호라며 삼국사기를 빌어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이곳에서 태어나 고려와 왜에 잡혀 갔던 눌지왕의 동생인 복호와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왜의 포로가 되어 왜왕이 신하로 삼고자 하자 계림의 소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하여 사지가 불타는 비참한 죽음을 맞은 신라의 충신으로 절의를 지킨 충절이었으니 사당에 모셔진 진영에 예를 올리고 싶었으나 주먹만한 자물쇠가 발길을 돌리란다.

양산시가지를 가로질러 천성산을 향해 대석리 길로 접어들자 ‘물안뜰’ 당산 기슭에 목장승이 버티고 서서 딴에는 수문장이랍시고 뻐드렁니로 겁을 주며 거드름을 피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안내판을 마주하니 서기 661년 원효대사가 천성산을 찾아들며 이곳이 성지라고 일러줬다며 한 바퀴 돌면 심신이 맑아지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 하고 여섯 바퀴 돌면 액운이 소멸되고 열두 바퀴 돌면 아기가 생기고 스물네 바퀴 돌면 소원 한 가지는 이뤄진단다. 딱히 빌어볼 소원이 생각나지 않아서 한 바퀴를 돌아서 내려오자 그제야 목장승이 입을 헤벌쭉하게 벌리고 서먹해 한다. 진작 알아보지 벅수 같은 녀, 헛기침을 크게 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홍룡사 이정표가 먼저 나와 반기기에 집채 같은 바윗돌이 여기저기 웅크린 계곡길을 따라 편백나무 우거진 숲속을 가르며 단숨에 일주문 앞에 차를 세웠다.

아름드리 노송이 빼곡하게 하늘을 뒤덮고 계곡 건너편의 짙푸른 대숲 속에 심산 절집이 숨은 듯이 앉았는데 조망의 쉼터 옆으로 ‘가홍정’이라는 뜻밖의 정자가 경내에 앉았다. 정자를 돌아들자 맞은편 계곡 위로 아치형의 석교가 줄기차게 쏟아지는 폭포의 위세에 주눅이 들었는지 하얗게 질려서 활처럼 굽었는데 건너편의 산신각이 석주를 바쳐 세운 벼랑 끝에 앉아서 안쓰럽게 보고 있다.

계곡을 이은 다리를 건너 대웅전 뜨락으로 들어서니 경내가 좁아선지 웅장한 전각들이 오밀조밀하게 추녀를 맞대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관음보살 친견설화가 전해지는 관음성지로서 산신각을 돌아 천인단애의 절벽 아래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이백육십척의 장엄한 홍룡폭포가 물보라를 흩날린다. 오색무지개가 천상으로 이어지는 석벽 아래에는 단아한 관음전이 그림같이 앉았다. 물욕의 저편에 계신 불보살도 자연의 비경만은 탐하지 않을 수 없었던가. 기막힌 절승이요 넋을 빼는 비경이다.

이참에 원효암을 들러서 천성산까지 오르려고 했는데 절경에 매료되어 해 가는 줄 몰랐는데 서산에 걸린 해는 길손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석양은 내일을 예비하며 바쁘게 살라 말고 우거진 송죽은 청풍을 내려주며 욕심을 버리란다. 훗날을 기약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홍룡폭포와 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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