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붉은 편지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붉은 편지
  • 경남일보
  • 승인 2015.04.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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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디카시

 

<붉은 편지> -조현석


이 자리가 맞나 싶어 두리번거리다
길고 긴 겨울잠 깰 즈음 떠오르는 한 시절
화사한 기억은 희미하고 까마득하여라


몸이 먼저 알아채는 저 화사한 봄볕
붉은 고백 안에 노랗게 멍든 가슴
사나흘 피었다 통째로 날아드는 봄편지 한 통



스마트 정보 기기들이 사람들 간의 소통을 전담하면서부터 옛날 저 붉은 동백을 닮았던 우체통을 목격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기껏해야 가로, 세로 10cm 남짓한 액정 플랫폼 안에 건조한 몇 줄의 문장들로 용건을 전하는 요즘의 정보 기기들이 밤을 새워 쓰고 찢고, 또 쓰기를 반복하던 손편지의 서정을 어찌 감히 흉내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휘발성 강한 그 편리함 앞에 편지지를 고르고 그에 맞는 봉투를 고르고, 기획 우표들이 발행될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렸던 무수했던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들이 무너지고 말았다. 언젠가 어느 봄날, 붉은 우체통 안으로 머뭇거리며 밀어 넣었던 노란 고백 몇 줄들이 회신 없는 추억으로만 가물대는 요즘, 봉오리째 몸을 떨구는 저 동백의 문장들을 감히 흉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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