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의미 변해버린 문전옥답(門前沃畓)
<농업이야기>의미 변해버린 문전옥답(門前沃畓)
  • 경남일보
  • 승인 2015.04.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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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호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수경재배담당 박사)
‘문전옥답(門前沃畓)’은 사전적으로 집 가까이에 있는 비옥한 논을 의미하는 말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었던 시절 마을에서 먼 곳에 위치한 논밭보다 몇 배 이상 프리미엄을 붙여 거래될 정도로 가치가 있었다.

물 대기도 쉽고, 거름이나 비료도 수월하게 줄 수 있다. 또 병충해도 즉시 관찰하여 틈나는 대로 방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이 두고 수시로 살필 수 있는 땅이기에 소출도 먼 곳의 논밭보다 더 많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문전옥답의 가치는 다르다. 옛날 농사꾼 입장에서야 문전옥답이 최고의 땅이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고 싶은 선망의 유산이라 생각하지만 요즘 시대에 땅을 사고파는 재테크의 입장에서 문전옥답이야말로 투자가치가 거의 없는 땅이다.

쌀 팔아서 부자 되겠다는 발상인데 투자 가능성은 제로다. 재테크 목적에서 바라보면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잘 되어있고 수리시설이 좋아 농사짓기 좋은 문전옥답은 보전농지로 묶어서 계속 규제된다. 농사짓기가 불편하고 오직 빗물에 의해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산 밑의 경작지 천수답(天水畓)은 언젠가는 개발되어 투자가치가 있는 땅으로 변하리라 믿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님으로부터 상속받고 싶은 1순위도 농사짓기 편한 문전옥답이 아니라 바로 임야나 척박한 천수답이 되는 셈이다.

문전옥답에서 ‘옥답(沃畓)’이란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기름진 땅을 말한다. 그런데 요즘 고소득 작물이라 불려지는 파프리카, 토마토, 딸기 등 대부분 작물은 기름진 토양이 필요 없는 온실에서 비료와 물만 공급하는 수경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옥답이 필요 없는 시대에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또 미래농업의 일환으로 각광받고 있는 식물공장 농업은 건물 안이나 생활공간에서 농사를 짓는 시스템 농법이다. 이 식물공장은 문전옥답의 ‘문전(門前)’과 ‘옥답(沃畓)’이 모두 필요가 없는 농업이다.

농업자재와 재배기술이 개발되어 도시농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채소를 가꾸고 건물 옥상에서 과수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런 흐름에 따라 유비쿼터스 농장(Ubiquitous Farm), 또는 유팜(U-Farm)으로 불리는 도시형 ‘스마트 식물공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식물공장에는 농사지을 땅도, 햇빛도 필요 없다. 흙과 비료대신 배양액을 햇빛은 LED 조명이 대신한다고 하니 앞으로 문전옥답의 개념은 사라질 것이고 농촌과 도회지의 경계 또한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왠지 박경리 소설 ‘토지’에서 주인공 최서희가 간악한 야심가 조준구에게 조상대대로 내려 온 하동 악양들 문전옥답을 하나 둘 빼앗기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장영호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수경재배담당 박사)

 
장영호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수경재배담당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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