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이름으로
밥의 이름으로
  • 경남일보
  • 승인 2015.04.1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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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문정임

학교 급식으로 경남도가 시끄럽다. 묵묵히 먹던 식판을 앞에 놓고 새삼스럽게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원래부터 식견도 없는 나인지라 무·유상이냐의 논란은 훌륭하신 분들이 원만하게 잘 처리할 것으로 믿는다. 다만 급식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은 늘 지니고 있었던 터라 이참에 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 관심이 갔다.

우리나라같이 연중 기온이 40도 이상 차이가 나는 이런 기후대의 나라에서는 밥상 차리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여름에는 시원한 음식으로 입맛과 영양을 챙겨야 하고, 한겨울 혹한에는 또 뜨거운 국물 종류로 추위를 이겨야 한다. 이런 조건에 영양과 위생을 잘 갖춘 식단은 지금까지 현장에서 애쓰는 관련 담당 선생님들의 수고 덕분으로 학생 건강증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음식은 물질이지만 맛과 향은 엄밀히 말하면 굉장히 추상적인 것이다. 이 형이상학적인 맛을 지키기 위해 인류는 때로는 전쟁도 불사했고 커다란 경제적 손익도 발생시켰다. 우리도 해외에 한식 맛 알리기에 수백억씩 돈을 써 가며 홍보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후손들의 입맛 가꾸기에는 얼마만큼의 철학을 갖고 대하는지 모르겠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요리 유학을 가는 이들을 보라, 이것도 큰 문화적 자산이다.

카이스트 총장으로 와 있던 미국 교수는 우리 나물에 대해 극찬을 했다. “한국인은 천재다. 들판에 흔한 잡초들을 다듬어 수백 가지의 나물 요리로 만들어 낼 줄 아니까”라고. 고온다습한 환경을 잘 이용한 한 예라 하겠다. 은근하게 우려내어야 하는 육수는 핵가족화된 가정에서는 맛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것을 학교 급식을 통해서 제대로 맛나게 해 준다면 단체급식의 유용한 점일 것이다. 세계 최고라고 알려진 프랑스 요리를 요리사들이 가끔 초등학교에 가서 무료로 제공하는 날이 있다 한다. 정통한 프랑스 요리의 진수를 어린이들이 맛보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하게 조리된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식기, 친구와 선생님과의 정겨운 대화, 예쁘게 수저질하는 그런 급식을 그려본다.

이제 우리 정치도 좀 진화했으면 한다. 돈을 누가 내느냐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

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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