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그리고 창은…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그리고 창은…
  • 경남일보
  • 승인 2015.04.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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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디카시

 

<그리고 창은 망설이지 않고 어두워졌다>
-박지웅



독사에게 물린 집을 보았다. 벼락에 물린 집을 보았다
벼락이 집의 목덜미를 힘껏 움켜쥐고 있다

꿈틀꿈틀 기어가 방 안을 들여다보는 벼락
집 한 채 먹어치우는 저 차분한 독사들

 

주인은 미처 이름도 챙기지 못하고 떠났다

 

1960년대, 인본주의 지리학으로 새 바람을 일으킨 ‘이푸투안(Yi Fu Tuan)’은 ‘장소’를 일컬어 특정공간 안에서 이뤄진 무형의 서사에 대한 인식이라 규정했다. 공간이 물리학적 구성체라면 장소는 그 공간 안에서 체험되는 삶의 총체적 서사체라는 것이다. 이 허름한 집 한 채가 시인의 눈길을 끈 것은 칠 벗겨진 시멘트벽이나 함부로 뒤엉킨 저 넝쿨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허름해지기까지 저 안에서 이뤄졌을 무수한 서사들에 대한 상상이 생기 잃은 저 집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복원해낸다. 그것은 ‘독사에게 물린’ 아픈 기억일 수도 있고, ‘벼락에’ 몸 웅크리고 떨어야 했던 어느 폭풍우의 공포스러운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들이 무수한 시간 앞에선 까무룩해지고 만다. 지금 이 순간, 쉼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행여 챙기지 못하는 이름들은 없는지 마음 써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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