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66)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
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66)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
  • 경남일보
  • 승인 2015.04.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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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진 옛 이야기, 바위 인들 세월을 어쩌랴
문화유적지를 찾아가면 오늘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이 있어 잦은 봄비가 잠시 갠다하여 홀가분한 차림새로 집을 나섰다.

창녕IC를 빠져나와 창녕 오일장 장터와 맞닿은 석빙고를 지나 송현사거리에서 포항과 밀양방향으로 20번 도로를 따라 좌회전을 했더니 좌우로 창녕고분군이 웅장한 크기로 여기저기서 솟아있고 창녕박물관 앞을 지나 고암면 소재지로 들어서자 밀양방향으로 24번 도로가 나뉘어져서 밀양방향으로 길머리를 잡고 소재지를 벗어나자 ‘구니서당’이라는 안내판이 불쑥 나타났다.

마련된 작은 주차장을 바깥마당으로 삼고 단청이 화려한 2층 문루가 태극문양이 커다랗게 그려진 육중한 삼간대문 위로 계자난간을 두르고 덩그렇게 높이섰다.

제향날에만 열리는 문루를 옆에 두고 관리사 건물을 통하여 사잇문으로 들어서자 동재와 서재를 널따란 안마당의 양편으로 거느리고 여섯 칸으로 된 목조와가인 서원의 정당이 돌계단을 중앙에 둔 축대 위로 웅장한 자태로 넓적하게 앉았다.



 
구니서원 전경


정면 창방 위의 ‘구니서원’이라는 커다란 편액이 붙은 옆으로는 ‘망도재(望道齋)’라는 작은 현판이 붙었고 대청의 안쪽 판문 위에는 ‘구니서실’과 ‘영모실’이라는 편액이 붙어있어 스승의 유훈을 따르며 학문을 닦던 옛사람들의 뒷그림자가 아련한데 기둥에 붙은 주련에는 ‘소학서중오작비(小學書中悟昨非)’라 했으니 소학동자라고 자청하시며 소학에 심취하고 이를 철저히 행하셨던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마주한듯하다. 선생의 예도를 두고두고 찬양해도 모자라서 ‘망도재’라는 편액까지 붙였다고 생각하니 선생의 인품을 짐작케 한다.

마루청 왼편의 한 칸은 높이를 올려서 밑으로는 아궁이를 만들어 온돌방으로 군불이 들게 하였고 오른쪽의 두 칸은 대청 높이와 같이 마루청과 방을 꾸며 절제된 선비의 품격까지도 우러나는데 세월의 내음일까, 서책의 향기일까, 묵향이 묻어나는 문방사우의 내음인지 온고지정이 은근하고 감미롭다.

툇마루가 좁다랗게 깔린 정당 뒤를 돌아가자 판문과 정면으로 청홍색의 태극문양이 그려진 내삼문이 우뚝 섰다. 경사가 급한 비탈을 따라 층층의 돌계단을 올라 협문으로 들어서자 빨간 원형기둥 위로 진하게 단청을 입힌 삼 칸 겹집인 ‘사현사’가 우뚝한데 당당한 풍채가 간결하고 근엄하여 가히 위압적인 자태라 얼른 옷매무새를 고치게 한다.

문이 잠겨있어 안을 볼 수는 없으나 외삼문 옆에 선 안내판에는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후손들이 한훤당을 받들기 위해 약300년 전에 세워서 묘각이나 서당으로 사용하였고 한훤당과 아들 김언상을 비롯한 3대 4명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김언상과 아들 김립 그리고 그의 아들 수개와 수회, 네 분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 했다. 사현사 왼쪽 옆으로 층을 지워 담장을 쌓아 별도의 문을 내어 한훤당의 위패를 모신 전각이 준엄한 자태로 우뚝하게 섰다. 고개를 숙여 예를 가름하고 내삼문을 나서니 길을 물어 볼 스승이 없는 오늘의 세상사가 참으로 아득하여, 흰 구름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니, 성현들은 청학 타고 떠나신지 오래고, 권모술수 이권다툼 가증스런 백성기망, 어지러운 정치사에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이 땅의 젊은이를 어찌할까 염려된다. 주세붕 선생의 묘갈명을 쓰신 김언상도 사헌부 감찰이셨고 이황선생과 도와 의로 절친했던 아들 김립도 사헌부 감찰로 3대를 이으셨고 아들인 수개, 수회는 임진란의 진주성에서 크게 공운 세운 형제분이시니 점필재 김종직 선생께 수학하여 정여창, 김일손 등과 함께 성리학의 대통을 이은 한훤당의 가르침이 두고두고 그립다.

선현들의 그리움을 뒤로하고 가던 길을 나서자 꽤나 널따란 들녘을 깔고 봉긋봉긋한 산을 등진 건너다 뵈는 마을은 퇴색된 기와지붕의 빛깔로 보아 구니서원의 문하생들이 대를 이어 사는지 고택의 고즈넉한 예스러운 풍광이 그림같이 평화롭다.

들녘은 갈수록 좁아지는데 좌우의 비닐하우스마다 청정미나리 판매장이 이어졌고 들녘 끄트머리를 돌아 이어지는 갈 길은 천왕산 준령을 향해 천길만길 하늘이 닿는 끝을 향해서 아득하게 건너다보이는데 산길 초입인 감리마을 들머리에 ‘화왕산자연휴양림’을 지나면 경남도문화재 46호인 ‘감리마애여래불입상’이 있다고 안내판이 일러준다.

미리 알지도 못했는데 이 얼마나 고마운가! 비탈진 산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잦은 봄비를 맞아서인지 소나무 숲이 유난히도 푸르고 송진 냄새가 전신을 휘감는데 ‘화왕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주차장에 닿았다. 직원이 일러주는 대로 차를 두고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서 낙락장송이 하늘을 뒤덮은 완만한 비탈길을 한참을 오르자 계곡을 막은 사방댐이 짙푸른 물을 한가득 머금은 위로 비류폭포가 비탈진 바위를 깔고 흘러내리는데 솔숲 틈새로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 은빛으로 눈부셨다.



 
감리 마애여래불입상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무성하게 우거진 설대의 아치형 터널을 벗어나자 엄청난 크기의 바윗돌이 길게 누었는데 좁다랗게 바닥을 내어주고 층층이 포개졌다. 마귀할머니의 이부자리 일까, 신선들의 것일까. 정혼남이 죽자 입산한 낭자가 베틀을 차려놓고 베만 짰다는 슬픈 전설이 구전되는 베틀바위를 지나자 우람한 바위가 길게 가로 누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어깨까지 닿은 오른쪽 귀 말고는 이목구비의 훼손이 너무 심하고 양 팔도 잃었다. 법의의 주름선이 비단결 같이 보드랍게 살랑거리건만 어쩌시다 육신마저도 건사하지 못했을까. 심산 바윗돌에 주야장천 등 붙이고 천년세월 마다않고 풍우한설 소관 없이 중생발원 들어주는 여래불이 만고풍상 세월의 상처인가, 무작한 광기의 해코지를 받았을까.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불상의 상징이라고 안내판이 귀띔하건만 어깨 폭 1m에 신장이 2.65m 인 장대한 마애불은 바위에 붙은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업장을 바위로 뭉쳐서 짊어지셨건만 마지는 고사하고 향내음 흔적도 없으니 이를 어쩌나. 나무본사석가모니불!

송진내음에 흠뻑 젖으며 삼림욕을 푸지게 한 하산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다시 감리마을 초입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천왕산을 넘으려고 가는 길을 재촉하여 고갯마루에 닿았다. 바람도 쉬어 가고 날짐승도 쉬어 넘는 ‘천왕재’ 라며 숨 가쁜 차도 쉬고 무거운 마음도 내려놓고 쉬라면서 국수와 차를 파는 간이매점의 아줌마가 길손들을 반긴다. 머리끝이 하늘에 맞닿으니 산바람 봄바람이 더없이 상큼하다. 겹겹의 봉우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장관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끝머리에 닿자 ‘소태리 5층석탑’을 알리는 안내판이 길마중을 나와 섰다. 좁다란 들녘을 건너니까 들머리 말고는 동그랗게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천죽사’의 경내 뜨락에 보물 제312호인 5층 석탑이 의연하게 높이 섰다.

석탑의 상륜부는 없어졌고 노반만 남았는데 3단의 받침을 두른 옥개석은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지만 전각은 버선코 마냥 치솟았고 끄트머리에 연꽃 문양을 새겨 아름다움과 곡선의 멋스러움에 풍령까지 달았던 흔적이 뚜렷하다. 간결한 탑신은 날씬한 풍모로 안정감 보다는 헌칠한 멋이 난다. 가로세로 3m를 훨씬 넘는 기단과 하대갑석의 정교함이 기막힌 명품이다. 정녕 정으로 쪼아서 다듬었단 말인가, 누구의 기도가 응집된 것일까, 간절한 소원은 천년도 수유던가. 무슨 소원이 그리도 간절하여 이토록 고운 결로 빚은 듯이 쌓았을까! 솔바람 소리에 어우러진 청아한 풍령의 소리는 번뇌의 망념을 티 없이 씻어주련만 긴긴 역사 속으로 멀어져 간 소리가 정녕으로 그립다.



 
소태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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