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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15> 순창 회문산아픈 역사 가득한 산…안개비 속을 걷는 산행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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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6  22: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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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모를 꽃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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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에 매달린 이슬방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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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바람꽃 사진제공=배여진 창원시의회의원


꽃잎 끝에 달려있는 작은 이슬방울들/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어디로 데려갈까/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이들을 데려갈까/

회문산에 꽃이 피었다. 이름 모를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70년대 공전(空前)의 히트곡 ‘아름다운 것들’ 을 떠올리게 했다.

정작, 이 산이 자랑하는 꽃은 남방바람꽃이다. 천진난만한 여인이라는 꽃말을 지닌 청초한 이 꽃은 제주바람꽃이라고 불렸으나 자생지가 회문산을 비롯해 남부지방 몇 곳에서 더 발견되면서 개명했다. 4월 말부터 5월에 핀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채취로 절멸위기에 놓이면서 보호를 위해 호랑이 사자를 가둔 동물원처럼 철조망 안에 가둬 키운다.

회문산에 이런 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3000개에 달했던 무덤, 지금은 300여기가 남아 있다.

대체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회문산은 예부터 5대 명당 중 하나로 영산으로 이름났다. 홍문대사가 이 산에서 도를 통해 ‘59대 1800년 동안 발복 한다’는 이른바 ‘회문산가 24혈 명당’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명당을 찾는 행렬이 이어졌다.

한말 국운이 쇠락하던 때는 정읍의 면암 최익현, 임실의 돈헌 임병찬의병장이 이 산을 거점으로 피를 뿌리는 항일 구국투쟁을 펼쳤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남쪽에 고립된 인민군이 빨치산과 합류하면서 남부군 총사령부를 구축했다. 국군의 토벌과정에서 국군과 인민군 빨치산, 수천의 양민들이 꽃잎처럼 스러졌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사후에는 그 형제들이 이 산에서 안전을 보장 받았다. 훗날 그들도 이곳에 묻혔다. 회문산은 꽃의 산이다.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 있는 높이 830m의 산이다. 첩첩산중,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소설 남부군의 배경, 동학혁명과 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 빨치산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있었다.

▲산행코스 휴양림관리사무소→이정석→교량 →돌곶봉→시루봉→헬기장→무덤군→여근목→천근월굴→회문산 정상(큰 지붕)→삼연봉·휴양림 갈림길→서어나무→역사관→위령탑→숲속의 집→노령문→주차장 원점회귀.

▲진주서 순창 회문산자연휴양림관리소까지 차로 2시간 2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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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 휴양림 입구 100m 지점 교량 앞에 ‘회문산 휴양림’ 이정석이 서 있다. 취재팀은 다리 건너 노령문 입구에서 왼쪽 등산로를 따라 산으로 올랐다.

초입에는 키 작은 관목류와 산죽이 주류다. 아침부터 내린 안개비가 도통 그칠 기미가 없는데 먼 하늘에는 더 짙은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산에 무덤이 보인다. 봉분의 잔디가 훌러덩 벗겨져버린 무덤, 더 이상 흙이 쓸리지 않게 여러 개의 나무말뚝으로 쐐기를 박아 놓은 모습이 을씨년 스럽다.

10시 10분, 1.1km 올라온 지점 돌곶봉에도 무덤이 보인다. 산줄기는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서는 길로 잠시 숨을 고른다.

시루봉 도착할 때까지 수 십기의 무덤사이를 지난다. 작은 무덤, 큰무덤, 돌밭사이 무덤, 외딴 무덤도 있다. 봉분 반쪽이 사라져 버린 섬칫한 무덤도 있다. 큰 지붕으로 불리는 회문산 정상부근에는 아예 넓적 돌 여러 개로 봉분을 덮었는데 그 모습이 거북등딱지를 닮았다. 동물, 아니면 사람소행? 회문산 명당 24혈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회문산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음기가 강한 산이었다.

동양 최고의 ‘여근목 소나무’가 나온다. 정상부근에는 남녀의 궁합을 말하는 ‘천근월굴’도 있다.

여근목의 생김새는 그야말로 요상하고 희화적이다. 한국 전쟁의 화마와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 산에 불을 질렀음에도 여근목은 살아남았다.

천근월굴은 큰 구멍이 나 있는 바위로 두 세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과 정면에 상형문자로 천근월굴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강절 선생의 유가 시에 나오는 글로, 천근은 남자의 성, 월굴은 여자의 성을 나타내 음양이 한가로이 왕래하여 소우주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해진다는 뜻이다.

11시 13분, 큰 지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회문산 정상에서도 안개비는 계속됐다. 전망도 없고 사진도 촬영하기 어려운 환경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지체하지 않고 내려서면 삼연봉과 회문산역사관(휴양림)갈림길이다.

눅눅한 날씨, 휴식을 위해 자리를 폈던 장소는 모래알 같은 벌레들의 습격으로 쫓겨 날수 밖에 없었다.

결국 산비탈 언저리, 젖은 낙엽 위에서의 점심은 불편했고 휴식시간도 짧았다. 내림 길은 심하게 급하다.

이번엔 기이한 서어나무가 등장한다. 시골에서 써나무로 불리는 나무는 서쪽의 나무라는 의미가 있으며 재질이 단단해 예부터 도끼자루로 썼다. 서부지방 산림청의 보호수로 지정됐을 만큼 수형이 울퉁불퉁 이채롭다. 수령 100년에 둘레가 126cm이다. 숲의 순환 마지막단계에서 나타나는 수종이라고 한다.

꾸지뽕은 날카로운 가시가 특징. 유독 윗가지에만 가시가 있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들로부터 새순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이라고 한다. 뽕나무가 아닌데 궂이 뽕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꾸지뽕이 됐단다. 이 뽕나무에 자라는 버섯이 최고의 상황버섯으로 인정받고 있다.

 

   
▲ 여근목.
   
▲ 보호수 서어나무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슬픈 풍경, 희귀식물 남방바람꽃은 동물원 호랑이처럼 가둬놓았다.

곧이어 숲속 사이로 회갈색의 건물들이 하나 둘씩 보이고 자연휴양림이 시작된다. 회문산 역사관은 저항과 투쟁, 격동의 근현대사를 한 몸에 체험했던 회문산의 상흔, 아픈 역사를 전시해 놓았다.

빨치산 활동을 재현한 미니어처, 동학혁명과 의병활동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100만권 판매와 관객 70만명을 기록했던 영화 남부군의 활동무대였다고 적고 있다.

1945년 순창에서 강대성에 의해 창립된 갱정유도사상에 관한 내용도 눈에 띈다. 유(儒)의 범절 불(佛)의 형체 선(仙)의 조화, 인의예지의 인간성을 회복해 궁극적으로 지상천국을 실현하고자 했다. 우리고장 하동 청학동이 갱정유도의 지상낙원에 속한다. 하지만 강대성은 UN에 메시지를 보냈다는 혐의를 받아 국가보안법, 혹세무민 등의 죄목으로 전주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훗날 1954년 8월 전주도립병원에서 사망했다.

 

   
▲ 6.25양민희생자 위령탑

낮 1시, 한국전쟁 양민희생자 위령탑을 지나 출렁다리와 노령문에 닿는다. 노령문 주변에는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자리와 임시간부 학교였던 노령학원 터가 남아 있다.

고래로 종교와 이념의 아귀다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전장. 귀를 찢는 날카로운 총성과 사람들의 비명이 난무했을 산야, 진홍 핏물이 홍수가 되어 흘렀을 계곡,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현대식 펜션과 아름다운 휴양시설이 즐비하게 들어 서 있다. 국립휴양림으로 여름철이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 아픈 기억의 흔적은 안개비에 묻힌 위령탑과 역사관이 대신할 뿐이다. 1시 20분, 휴양림관리사무소로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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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월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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