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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39)<100>경남지역의 문인 등단50주년 기록자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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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5: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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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정한은 1936년에 등단하고 1996년에 돌아갔으므로 등단 60년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알려지기로는 1941년 일제말 이후 광복기를 거쳐 1965년에 이르는 25년간을 절필했다. 지난 회에서는 그 절필의 이유를 살폈다. 그런데 최근 광복기(1945-1949)에 쓴 작품들 다수가 새로 발굴 공개되어 주목된다. 2014년 2월 4일자 부산일보 기사를 보면 광복기 5년 동안 김정한이 발표한 자료를 취재하여 그 내용을 공개했다. 문학평론가 이순욱이 ‘비평문학’ 47호와 ‘한국민족문화’ 49호에 발표한 논문 ‘광복기 요산 김정한의 문학활동 연구 1.2’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시와 소설 등을 다수 발굴했다는 것이다.

소설로는 ‘호출의 설날’, ‘서거픈 이야기’ 등이 있고 연시조 ‘해방부’, ‘옥중투사에게’ 등과 자유시 ‘유리창’ 등이 소개되었다. 필자는 이 자료가 소중하다는 것은 일단 인정하겠는데 1950년 이후 10여년이 또 빈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 의미 검토와 발굴작을 직접 읽어보기 전에는 어떻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겠다.

김정한은 필자가 박사과정에 있을 때 강의를 했고 서재에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서재 하나에는 사벽이 신문 스크랩 자료로 가득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책이 가득하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신문을 오려 간직하는 자료가 사벽 가득한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추하기로는 저 자료들은 그가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사설을 쓰기 위한 자료로 쓰기 위해 모운 것일 수도 있고 그것보다는 그가 주로 다루는 낙동강변 농사꾼들의 착취받고 소외되고 유린이 되는 현실 사건들을 모아놓고 야금 야금 선택해 썼던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판단이 되었다.

그는 강의할 때 민속자료나 해석 같은 것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강의했다. 일테면 아이 낳은 집의 금기줄이라든지 그네나 널뛰기의 자세라든지 하는 것에 열중했다. 뒤에 P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친일작품에 관해서 허심탄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논문 지도에 있어서도 철저했고 통과는 시키더라도 교육할 것은 교육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소신파였다.

김정한의 단편 ‘사밧재’는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려증동 교수가 늘 칭찬해 마지 않았다. ‘사밧재’는 일제 강점기 송노인이 노환으로 죽어가는 누이를 만나기 위해 생애 처음 버스를 타고 사밧재를 넘어간다는 이야기다. 버스 속에는 일제 징병에 짬없이 순사들과 함께 탄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누이를 주기위해 담은 술 ‘뱀술’을 순사들과 나눠 먹는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었다. 송노인은 사밧재 마루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려 물어보니 그 버스가 추락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설은 오누이간의 정이라는 주제와 일제강점기의 아픔이라는 부주제가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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