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그림이야기] 직관의 묘사 추상미술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직관의 묘사 추상미술
  • 경남일보
  • 승인 2015.04.2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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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아닌 표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
추상(抽象) 미술(Abstract Art)은 비구상(非具象), 비대상(非對象) 미술이라고도 불린다. ‘추상’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개념의 공통된 특징이나 속성으로부터 유추되는 일련의 사고작용을 말한다. 그러므로 추상미술이란 화가 앞에 존재하는 한정된 대상물을 묘사하던 기존의 미술과는 달리 작가의 직관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사고작용을 묘사하는 미술이다.

추상미술은 물리적인 공간 속에 특정 위치를 점유하는 존재들, 즉 자연물을 거의 그림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미술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사람이나 꽃, 동물 등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추상 미술은 색채, 질감, 선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추상적인 요소로 작품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 추상성에 중점을 두어야 이해되는 미술이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꿈의 즉흥(Traeumerische Improvisation. 1913)’. 꿈이 가지는 몽환적인 느낌과 강렬한 즉흥적 색채감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점, 선, 면으로 구성된 미적 세계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이러한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그가 1911년에 독일 뮌헨에서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와 함께 결성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가 바로 이 추상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186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1886년 모스크바 대학교에 들어가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성공적인 법률가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그는 놀랍게도 29살 되던 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람회에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그림, ‘꿈의 즉흥(Traeumerische Improvisation)’은 1913년 작품으로서, 칸딘스키가 청기사파를 결성한 뒤 추상화로서는 초기의 작품이다. 꿈이 가지는 몽환적인 느낌과 강렬한 즉흥적 색채감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칸딘스키는 1909년부터 1914년까지 35점의 ‘즉흥(Improvisation)’시리즈를 그렸는데 우연히 거꾸로 놓인 캔버스를 보고 어떠한 대상을 그렸는가에 상관 없이 색채와 형태 등 기본적인 회화 요소만으로도 미(美)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칸딘스키는 추상화로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칸딘스키는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조국 러시아로 돌아가 민족 계몽 운동에 투신한다. 1922년 독일 바우하우스의 요청으로 다시 독일로 돌아왔고 그 곳에서 미술이론과 회화를 가르치게 된다. 하지만 1933년 독일의 나치정부는 바우하우스를 폐쇄하였고 칸딘스키는 이로 인해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1944년 프랑스에서 죽게 된다.

우리 눈에 익숙한 사물은 거의 없다. 노란색 바탕 위에 강렬한 원색들이 질서 없이 흩어져있고 사이 사이 검은 선이 뭔가를 표현하다 그만둔 듯한 느낌으로 이곳 저곳에 있다. 꿈이 가지는 무정형의 세계와 즉흥이 암시하는 불규칙적인 리듬이 화면에 가득하다. 따라서 이 그림은 구체적인 것을 설명한다거나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부에 상존하고 있던 꿈에 대한 직관을 회화적인 기법을 통해 외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흥’이란 주로 음악에 쓰이는 용어로서 연주자가 자의로 악보와 악곡을 벗어나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칸딘스키의 회화는 기존의 구상 미술이 지켜야 할 사물의 형태와 구도, 그리고 빛에 의한 명암 등, 지켜야 할 모든 틀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작가만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내부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미적인 감흥을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3원색을 중심으로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이다.



 
프란츠마르크(Franz Marc)가 그린 ‘티롤(Tyrol.1914)’. 오스트리아 서부지역인 티롤의 자연풍광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표현했다.


◇강렬한 색채와 심오한 이미지의 조화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는 1880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풍경화 전문 화가이고, 어머니는 독실한 칼뱅주의자였는데 마르크에게 이러한 부모의 영향은 매우 강렬하여 평생 동안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대한 의지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 신부가 될 생각으로 신학을 공부했으나, 공부하는 동안 철학과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스무 살 되던 해에는 그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 해, 마르크는 드디어 뮌헨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한다.

티롤(Tyrol)은 오스트리아 서부지역으로서 주도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인스부르크다. 알프스산지의 서편 끝자락에 위치한 고산지역으로서 아래로는 이탈리아와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스위스와 접경을 이루며 북쪽으로는 독일과 마주하고 있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워서 이미 오래 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하다. 1914년 마르크가 동물 형상의 묘사에서 진일보하여 추상적 이미지로의 전환을 시도한 ‘모양의 충돌(Kaempfende Formen)’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이 ‘티롤(Tyrol)’은 티롤 지역의 자연풍광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표현주의적 정서, 즉 주정적 기조의 화풍을 잘 드러내고 있다.

1910년 마르크는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를 만나면서 색채의식에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이전의 구상미술의 색채의식을 바탕으로 마케의 전위적(avant-garde) 색채가 융합되어 마르크만의 독특한 색채의식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1911년,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청기사파’를 결성한 뒤 마르크의 회화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화면 전체에 연속되는 삼각형 이미지는 티롤의 산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마르크가 가진 색채감, 이전의 동물적 이미지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원색 계열의 강렬함이 덧씌워지고 다시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이 주도하는 마르크적 색채 의식이 더해진다. 구체적 이미지는 분해되어 색상과 결합하고 그 색상은 다시 마르크의 상징성과 연결되어 티롤의 자연환경을, 밝은 듯 하면서도 심오한 느낌을 주는 새로운 이미지로 창조해 내고 있다.

마르크를 비롯한 청기사파 화가들은 색채의 사용에 있어 주로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을 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 때 붉은색은 물질적 이미지로, 푸른색은 이성적 혹은 사유의 이미지로 사용하였으며 노란색은 주정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이 세 가지 색을 적절하게 분포시키고, 혹은 섞기도 하면서 색채와 이미지의 융합을 통한 추상회화의 지향점을 마르크는 잘 보여주고 있다.

/곤양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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