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원년
어떤 원년
  • 경남일보
  • 승인 2015.04.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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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문정임

간통제가 폐지됐다. 한국사회에서도 부부간의 애정문제는 당사자끼리 알아서 행할 일이지 국가가 거기까지는 참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콘돔회사 유니더스의 상한가, 불륜채팅 사이트 에슐리메디슨 검색량 폭증, 무인텔 이용률 급증…. 우리가 당장 접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변화는 이런 정도다. 국가기관의 높으신 분들이 잘 판단해 내린 결론이라고 믿자.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시 구절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은 자기 아내가 선배와 살림을 차리고 있는 집을 찾아가 “자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집에 가자”라고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안 가겠다는 아내에게 칼부림이나 머리채 같은 낱말을 사용할 행동을 하지 않고 그는 돌아왔다, 혼자. 심지어는 ‘성(性)’이라는 시에서는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라는 노골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문학인으로서는 ‘사랑’을 보통의 생활인과는 다르게 파악할 수는 있었겠다. 정신의 온전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징적으로 배설/정화행위라고 섹스를 정의하고, 비루하고 이중적인 자신의 민낯을 수락하고 대면하는 싸움의 과정으로 파악했다고도 한다. 그 싸움을 구성하는 열렬한 계기는 아내란 존재다. 그래서 그는 억압의 영역자체에 대한 시적 저항을 자기폭로로 삼은 것이었다.

심심산골 할머니들도 다 아는 ‘그 왜 미국 대통령의 첩싸이 사건’ 말이다. 자서전에서의 힐러리는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전 측근들은 당시 백악관에서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를 들었고, 침대보 자락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고도 증언했다. 그런 상황도 국정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미국인들은 생각하는가, 궁금하다.

결국 부부 사이에도 힘, 미력, 마력, 재력, 권력, 금력…있는 자가 우위 고지를 점하게 됐으니, 소득이 많은 혹은 잘난 배우자가 ‘나 이제 당신에게 싫증났어, 보상해 주면 될 거 아냐’ 하면 끝인 것이다. ‘미녀 스무명 항시 대기’라는 업소의 현수막이 장보러 가는 길 앞을 가로막는데 국가는 너무나 선진된 국민의식을 요구하는 것만 같아 거리감이 느껴진다. 어쨌건 무촌인 우리 사이도 경쟁력을 갖춰야함을 공표하는 원년이 됐다. 아아,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우리 대한민국!

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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