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 (시인)
사월이 간다. 봄날이 간다. 엘리엇은 사월이 가장 잔인한 달인 이유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섞은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기’ 때문이라 했다. 겨울은 차라리 따뜻하기라도 했다며, 1차 대전이 끝난 세계의 황량한 의식을 황무지로 형상화해서 노래했다.
신동엽 시인은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다. 4·19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5·16으로 허망하게 무너지는 처참한 모습을 보며 ‘사월도 껍데기는 가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비 오는 날 국무총리가 수유리에서 4·19 기념사를 읽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며 취임사 하는 모습이 엊그제 같았는데, 부정부패와 거짓말의 대명사가 되어 세상을 발칵 뒤집더니 누구에게보다도 잔인한 사월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눈물로 하야를 했다.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13일은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이었다. 1919년 당시에는 믿을 만한 곳이 상해임시정부밖에는 없었던 것이 슬픈 우리 민족의 솔직한 역사다.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이었다. 나에게 묻는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민족통일을 위해, 세계평화를 위해 나는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그새 산과 들에는 져야 할 꽃들은 다 지고 피어야 할 풀잎들은 모두 피었다. 사월은 세월호 참사 하나를 부채처럼 역사 속에 더 짊어진 채 4·19를 지나 오월로 간다. 가정의 달, 오월에는 아지랑이 속을 뚫고 5·16과 5·18이 찾아올 것이다. 5·16과 5·18은 또 4·16, 4·19와 우리에게 어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까.
젊은 날 최루탄에 맞서며 지키려 싸웠던 정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진절머리를 쳤던 부정과 부패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민족통일과 세계평화는 아직도 역사의 진실 앞에 당당한가.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사월이 간다. 아, 봄날이 간다.
양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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