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신록의 향연을 만끽하자
[경일포럼]신록의 향연을 만끽하자
  • 경남일보
  • 승인 2015.05.0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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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눈 떠 밖을 보면 온통 싱그런 향기가 요동칩니다. 꽃들이 다투어 피느라 난리가 아닙니다. 색들의 향연이 마치 축제에 온 것 같습니다. 그 중에 단연 으뜸은 새잎의 싱그러움입니다. 아이의 통통한 손 마냥 부드럽고 앙증맞습니다. 학창시절 읽었던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을 기억해 봅니다. “요즘 아침 조간신문을 가져오기 위해서 마당을 내려서면 신록의 싱싱함이 포근한 느낌과 함께 싱그럽게 다가옵니다.”라고 시작하지요.

저는 요즘 즐거움에 폭 빠져 있습니다. 주말 오후 들판을 쏘다니는 재미지요. 멀리 있지 않은 가까운 산이기도 하구요. 산보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사부작 사부작 발 가는대로 천천히, 일부러 천천히가 아니라 그저 뒷짐 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걸음으로 걷습니다. 눈은 그냥 가는 대로 두고요. 나무들이며 풀들이 새잎을 뽁뽁뽁 내밀고 있는 모습들이 얼마나 이쁜지요. 아마 그 모습을 잘 보지 못한 분들은 멀리 지리산이나 눈에 들어오는 산들이 연초록 빛깔로 상큼하니 몸단장을 한 모습은 보았을 테니 그 느낌이라고 할까요. 보다 눈에 가까이 두니 더욱 더 싱그러운 걸요. 상수리나무니 굴참나무니 졸참나무니 참나무가족들도 잎새 꽃의 모양새는 서로 달라 통통하고 쪼삣하고 새초롬하기도 하고 두루뭉술하기도 한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가요. 들어오지 말라고 생울타리로 심은 탱자나무 꽃은 바람개미같이,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같이 빙빙 돌아갈 것 같습니다. 진한 보랏빛으로 앙증맞게 꽃을 피운 제비꽃은 어떤가요. 청초하게 한 송이 피어난 제비꽃이 발끝에 문득 보였을 때 혹시나 밟을까 걱정을 하면서 눈여겨두는 그 색은 얼마나 어여쁜가요. 뭉텅뭉텅 피어난 제비꽃들은 꽃 크기도 크지 않아 모여들 있어도 아기들이 모여 노는 것처럼 귀엽기만 합니다. 이따금 유치원 아이들이 둘씩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작은 산길에서 맛보는 호사이기도 하지요. 선생님 뒤를 종종종 따라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바람에 살짝살짝 흔들리는 새잎의 흔들림 같기도 하지요. 저는 요 작은 산의 산보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잔잔하게 밀려오는 진정한 즐거움처럼 크게 감동받을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이따금 청설모니 딱따구리가 나무들을 오르며, 집을 지으며 내는 소리가 어찌나 정겹던 지요. 숲에서는 심심할 틈이 없군요. 그저 사는 생각, 일 생각들을 순식간에 잊게 해주니까요. 그것도 자연스레 말이지요. 얼굴을 매만지며 땀을 닦아주는 바람은 얼마나 시원하던 지요. 작고도 작은 행복이랍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니까요. 우리가 사는 주변엔 이런 숲이 많이 있기도 하구요. 하다못해 아파트 화단에서도 이런 기분은 느낄 수 있거든요. 새잎의 향연. 국어시간에 배웠던 신록예찬 말이지요. 그저 우리는 늘 보는 것 같이 눈으로 보고, 늘 걷던 것처럼 걷기만 하면 되니까요. 바람은 얼마나 싱그러운가요. 햇살은 또 어떻고요. 이렇게 어여쁘고 부드러운 햇살을 만져본 적 있나요.

요즘이 딱 그 철이지요. 새잎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거든요. 그러나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화려하게, 눈이 즐겁고 마음이 푸근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시기여서 가까운 산 가까운 숲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구요. 그로부터 숲은 젊음을 선사하니까요. 이번 주말엔 이런 가까운 숲에 들어 아주 소소하고도 여유로운 즐거움을 만끽하지 않으실래요?

 
박재현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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