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 원로를 만나다 (5) 우홍순 시인
[주춧돌] 원로를 만나다 (5) 우홍순 시인
  • 김영훈
  • 승인 2015.05.03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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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선구자 역할을 해야된다”
▲ 우홍순 시인.

 

우홍순 시인(83)은 우리의 슬픔 역사와 함께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겪은 그는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유등축제라는 시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비롯된 유등이 지금은 전세계를 밝히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며 “힘든 역사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를 전하고 있는 유등축제를 통해 우리 조상의 긍정적인 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홍순 시인의 어린시절은 국어에 대한 갈망으로 늘 목이 말랐다. 우홍순 시인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본강점기하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본어를 사용했다”며 “한 번은 친구에게 우리말로 이야기 했었다가 그 친구가 선생님께 말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담임 선생님은 일본인 교사였는데 우리말을 사용한 친구 한명과 함께 하루 종일 벌을 줬다”며 “초등학교 2학년을 서로 엉덩이를 맞대게 하고 손을 가랑이 사이로 잡게 해 벌을 줬는데 피가 거꾸로 쏠려 너무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때 당시의 우리말에 대한 갈망으로 우홍순 시인은 국어교사로 재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우홍순 시인은 어떤 일에 집중하거나 신경을 쓰게 되면 두통이 심하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장교 출신 교사가 내 담임을 했을때 일이다”며 “운동장 주변을 개간해 밭을 만들고 있었는데 정해진 구간을 넘어서면 혼이 났었다”고 말했다.

이어 “옆에 물건을 하나 집으러 살짝 정해진 구간을 벗어났는데 일본인 교사가 옆에 있던 대나무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때렸다”며 “열대가 넘게 맞았는데 다음날 머리가 너무 많이 부어 올라 놀랐다. 그 이후 신경을 많이 쓰거나 집중을 하게 되면 머리가 아파온다”고 전하며 당시를 회상하는 시인의 얼굴에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우홍순 시인은 국어교사로 재직중 친구인 김연동 시인의 권유로 1993년 시인으로 등단을 하게 됐다.

우홍순 시인은 “교지를 만들던 과정에서 썼던 시를 김연동 시인이 우연히 봤다”며 “학생들이 시를 써 달라해서 한편 쓴 것이 친구가 보고 훌륭하다고 시인의 길을 가보자고 권유해 지금자리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우홍순 시인은 “시인은 한민족의 선구자 역할을 해야된다”며 “시에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담아 표현해야 한다.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작품활동으로 국가와 민족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담은 작품활동을 계속 해 오고 있고 앞으로도 많이 할 것이다”며 “문집과 시집을 통해 나의 작품을 남겨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영훈기자 hoo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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