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가보자] 남해 독일마을
[우리동네 가보자] 남해 독일마을
  • 박철홍
  • 승인 2015.05.03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꼭 가봐야 할 국내 대표 100선 경남지역 11곳
빨간 지붕… 하얀 벽… 쪽빛 바다 ‘한국 속 유럽’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독일마을.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면 남해군에 접어든다. 10여분 차로 달리다 보면 멸치 죽방렴을 양옆에 끼고 있는 자그마한 다리가 나온다. 남해 창선섬과 본섬을 잇는 지족교이다. 지족삼거리에서 미조방향으로 10여분 해안도로를 더 달리다 보면 독특한 건축양식이 주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빨간 지붕과 하얀색 벽, 예쁜 무늬의 창문 등 동화 속 그림 같은 집들이 보인다. 마을의 모습만 떼어놓고 보면 실제 유럽에 온 착각이 들 정도다.

이곳이 남해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독일마을’이다. 이곳은 1960∼1970년대 가난한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근무하다 귀국한 교포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머나먼 타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웠던 사람들이 노년에 조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선택한 곳이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언덕으로 올라 가는 길에는 유럽풍 펜션과 커피숍들이 줄지어 들어서있다. 언덕을 반쯤 올라가자 ‘독일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주한독일대사관이 현지에서 수집해 기증한 광산유물들.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고된 역사를 한눈에

독일마을 맨 위 광장에 위치한 파독전시관을 찾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에 불과했던 1960년대 독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 2만여명의 파독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전시관에서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병종(71)씨를 만났다. 그는 1970년 저개발국 산업연수생 2기로 독일로 건너가 광부로 3년간 일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해 65세에 독일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6년전 이곳으로 왔다. 그는 석탄을 캐러 지하 1200m 막장에 내려가 겪은 온갖 고충을 들려줬다.

“지하 100m 내려갈때 마다 지열이 5℃씩 올라갑니다. 지하 1200m에 위치한 막장은 지열이 60℃나 올라갑니다. 너무 더워 일을 못하니깐 바깥공기를 갱도 안으로 불어넣어주는 송풍기가 있을 정도였죠. 독일사람들은 덩치가 커 작은 갱도안을 못 들어가기 때문에 늘 한국 사람들이 포복으로 앞장 서 나아갔습니다. 이같이 열악한 작업환경속에서 두려움을 모르고 일 하다보니 70여명의 희생이 있었지요.”

그는 전시관에 진열된 각종 물품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코 담배통’은 석탄 채굴을 하다보면 코가 막히는데 이 액체를 코로 빨아들이면 콧물이 나오며 코 안이 뚫린다고 했다. 전화기도 있었는데 갱도에서는 돌들이 떨어지곤 하기 때문에 플라스틱이 아닌 무쇠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 당시 광부들은 600마르크(4만원)를 월급으로 받았는데 그 돈의 전부를 가족을 위해 한국으로 송금했다. 8시간 근무외 잔업을 신청해 받은 수당으로 근근이 현지 생활을 이어갔다. 1960~70년대 광부·간호사 파견을 담보로 독일로부터 받은 차관과 이들이 보내온 외화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시관 한켠에서는 ‘독일로 떠난 젊은이들’을 주제로 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독일에서 파독 광부·간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흘러나왔다.

전시관 곳곳에는 당시 광부들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서구인의 체형에 맞게 제작된 스템펠(막장 붕괴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쇠기둥)은 너무나 무거웠다”, “독일 광산에 가면 매월 600마르크씩 준다는데 하루 두 끼도 못 먹는 고향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다(파독광부 권이종)” 등.

 
독일마을 광장에서 본 물건방조어부림.
◇한 폭의 그림 같은 마을

독일마을은 남해군이 1960~1970년대 독일에 파견됐던 교포들의 고국 정착을 돕고, 이국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지난 2001년부터 조성했다. 삼동면 물건리와 봉화리 일대 약 10만㎡ 부지에 조성됐다. 남해군은 사업비 약 30억원을 들여 40여 동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독일교포들에게 분양하고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마련해줬다.

교포들은 독일에서 직접 건축 자재를 가져와 몇 년에 걸쳐 전통 독일양식으로 집을 지었다. 빨간 지붕과 하얀 벽으로 색깔을 통일해 마을의 상징으로 삼았다. 현재 35가구가 집을 짓고 입주해 있다. 마을 위 광장에서 내려다보면 빨간색 지붕의 예쁜 집들이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그림 그 자체다. 천연기념물 제150호인 물건방조어부림이 저 멀리 보인다.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이 어부림은 길이 1.5㎞, 너비 30m의 반달형이다.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 종의 수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남해의 10대 비경 중 하나다.

광장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매년 10월 뮌헨 옥토버페스트를 본뜬 맥주 축제가 열린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익혔던 독일문화를 관광객들과 공유하는 축제로 독일의 정통 맥주는 물론 독일식 소시지와 빵을 맛 볼 수있다. 지난해 축제에는 관광객 8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경남도의 대표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철홍기자 bigpen@gnnews.co.kr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고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남해 파독전시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