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과 남이 하는 일
내가 하는 일과 남이 하는 일
  • 경남일보
  • 승인 2015.05.1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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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수필가)
이홍식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균형 잡힌 생각과 초연한 비판의식은 자신의 글을 보고 무엇이 나올 수 있을지 알아보는 데 분명히 유용한 생각의 도구다. 하지만 자신의 글을 독자의 눈으로 보는 기회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 말과 행동을 타인의 눈으로 관찰하면 객관성을 가진 냉정한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객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그동안 몰랐던 모습을 보고 지금까지 이 세상을 얼마나 내 중심으로 살았는가를 알게 되면 아마 스스로 놀라거나 부끄러운 일도 많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옳다고 생각하고 했던 일이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하고 있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판단이 들 때에도 우리는 자기가 고생한 양에 비례해서 그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에 매몰되어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다. 단지 내가 하는 일이 바르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는 많은 사람이 함께 공감할 때다.

지난해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숲속 바위틈이나 풀이 우거진 곳에 교묘하게 버려놓은 쓰레기를 보고 그런 짓을 한 사람을 향해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걸은 일이 있다. 등산객이나 나처럼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니면 양심 없는 저런 짓을 할 사람이 없다고 산에 올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분노했다. 올해 거의 같은 계절에 맞추어 둘레길을 갔다. 온산에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연녹색 나무들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그 선물을 온몸으로 받으며 고마움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한참을 가다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배낭에 코펠을 꺼내 내가 좋아하는 라면을 끓였다. 국립공원에는 취사금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보는 사람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러고는 남은 국물은 숲에 버렸다. 그런데 내가 국물을 쏟아버린 거기에 아주 작은 야생화가 무더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뜨거운 국물을 뒤집어쓰고 라면 가닥이 꽃잎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야생화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나를 보고 뭐라고 했을까. 말이란 사람이 만들어 서로 통하는 것이지만 꽂은 꽃들의 말이 있을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또 뭐라고 했을까. 내가 작년에 욕을 퍼붓던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내 모습이 아닐까.

이홍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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