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가보자] 남해 다랭이마을
[우리동네 가보자] 남해 다랭이마을
  • 박철홍
  • 승인 2015.05.20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비탈 일구고 파도 맞서며 살아온 삶 이야기
다랑이 논


남해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가천 다랭이마을을 찾았다. 마을 부근에 차로 들어서는 순간 광활한 바다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랭이마을 산책로를 따라 거닐면 바닷가부터 차례차례 쌓아올린 계단식 논이 눈앞에 펼쳐진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을 파낸 후 땅을 골라 전답을 만들고, 90도로 곧추 세운 석축을 쌓아 그 위에 또 하나의 논을 만드는 식이다.

이곳 사람들은 예부터 배로 고기를 잡는 대신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농사지을 땅이 모자라게 되자 산으로 올라가 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계단식 좁고 긴 ‘다랑이 논’이다. 원래는 ‘다랑이’가 표준어지만 지역 사람들이 예부터 ‘다랭이마을’로 불러 지금까지 이렇게 불려진다.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산비탈 급경사지에 자리하고 있다. 10여층에 이르는 논이 마치 바다 물결 같다.

다랑이 논이 언제부터 조성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도경에 ‘산이 비탈져서 개간하기 어려웠다. 멀리서 보면 계단을 닮았다’는 기록이 있어 역사가 유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암수바위을 만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미륵불이라고 부르는데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부른다. 숫미륵은 남성의 성기를 닮았고 암미륵은 임신해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암수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1751년(영조 27) 남해 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로 소와 말이 다녀 몸이 불편하니 꺼내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현령은 암수바위를 땅에서 꺼내 미륵불로 봉안했다. 매년 음력 10월 23일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다랭이마을을 둘러싼 길은 ‘남해바래길’에 속한다. ‘바래’라는 말은 이 지역 아낙네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말한다. 그때 다니던 길이 ‘바래길’이다.

다랭이마을은 남해바래길 중 지겟길과 앵강다숲길에 속해 있다. 지겟길은 조상들이 지게를 지고 땔감과 곡식을 나르던 길으로 한쪽으로 남해의 절경을 끼고 숲과 바다를 이어 걷는 길이다. 평산항부터 사촌해수욕장~선구~향촌~다랭이마을을 연결하는 14㎞ 코스이다.

다랭이마을에서 홍현해라우지 체험마을~두곡·월포 해수욕장~미국마을~원천을 잇는 14㎞ 길은 앵강다숲길이다. 이 코스는 호수 같은 앵강만을 중심으로 남면, 이동면에 걸쳐 있다. ‘꾀꼬리가 우는 만’이라는 뜻의 앵강(鶯江)만은 해안 절벽, 모래사장, 몽돌해안, 갯벌 등 우리나라 해안 지형의 특징을 두루 가지고 있는 곳으로 어촌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낭떠러지 절벽을 끼고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면 다랑이 논들이 올려다 보이는 절경을 만난다. 아래로는 아찔한 기암괴석으로 절벽이 뻗어있고 옆으로는 다랑이 논이 펼쳐진다. 길 곳곳에는 관광객들이 절경을 사진에 쉽게 담을 수 있도록 ‘포토 스팟’을 만들어 놨다.

마늘과 시금치 농사 때문에 사시사철 푸른 이 마을에서 봄의 전령사는 쑥과 유채꽃이다. 쑥은 3월부터 바다를 마주하는 논두렁을 덮고, 유채꽃은 4월 중순에 만개해 마을을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마을을 다 둘러보고 목이 마르다면 이곳 특산막걸리인 ‘다랭이 팜 생막걸리’를 마셔보는 것도 좋다. 현미쌀과 앉은뱅이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인데 해물파전을 안주 삼아 한 잔 걸치면 신선이 따로 없다.

 
다랑이 논.
다랭이마을 Tip==== 망 박스

다랭이 마을은 주차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다. 휴일에 산책길로 바로 내려가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마을 위 도로 쪽 주차장을 이용한 후 천천히 걸어내려가며 마을 풍경을 감상할 것을 권한다. 만일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다랭이마을’을 치면 나오는 이미지를 생각하고 갔다간 적잖이 실망한다. 유채꽃 등이 무성해 108계단 논의 형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철홍기자 bigpen@gnnews.co.kr




 
암수바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