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5월 23일 봉하마을, 그 이후
[경일시론] 5월 23일 봉하마을, 그 이후
  • 경남일보
  • 승인 2015.05.2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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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근 (객원논설위원·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지난 23일 봉하마을은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과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추도현장이 갈등의 현장으로 뒤틀려졌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 정치권에는 또다시 계파, 패권, 종북, 갈등, 배신. 지역주의 등 구태한 정치용어들이 뒤범벅이 돼 나뒹굴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집어삼키고 미래마저 어둡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끝을 이어가고 있다. 역시 정치는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날의 현장을 정치색 완전 빼고 국민의 입장에서 한번 되돌아보자.

먼저 상주의 태도와 초대받은 조문이냐 아니냐에 대한 부분이다. 추도식은 초대받은 자만이 오는 것은 아니다. ‘사전에 협의하고 참석해야 한다’, ‘충분히 협의하고 참석했다’라는 쌍방 주장은 모두 옳지 않다. 상갓집에 사전협의하고 가야 한다는 말은 들어 본 게 처음이다. 격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반 국민은 그렇다. 고인의 참뜻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참석할 자격(?)이 있다. 속마음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조문 온 것만으로도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리면 된다. 한 야당의원의 입을 빌리면 지역정서는 ‘전쟁 중이라도 적장이 조문 오면 예의를 표하는 것이 상식이고 예의’ 라는 것이다.

다음은 노건호씨의 발언 내용이다.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성숙된 언어로 정화돼 나왔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정치적 확대해석 없이 내용만 곱씹어 보면 정치권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 전직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평가할 일이지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노건호씨가 말한 ‘국체’ 발언은 여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고인이 되신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갈등과 분열을 보이고 있는 야당의 행위도 ‘국체’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국체를 소중히 여겨 달라’는 말은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권에 던지고 싶은 말이다.

사실 앞뒤 고려하지 않고 일부분만 잘라서 볼 때 공감 가는 내용은 또 있다.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 세우면서…이 엄중한 시기에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이 말이 노건호씨가 말하고자 했던 본질이라면 어느 누가 나서서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 경제도, 외교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말은 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 충분히 그 자리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꼴불견은 이번 일에 대한 정치적 실익을 따지는 것이다. 대권가도에 ‘비단길을 깔아줬다’, ‘대인배 이미지를 보였다’, ‘대권행보 파란불’이라고 평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낱 에피소드에 불과한 이런 일로 대통령감을 생각하지 않는다. 봉변으로 정치적 실익을 누린 과거의 잣대로 오늘의 국민들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구태한 모습 그대로일지라도 국민은 변했다. 진정한 대통령감이라면 봉변정치보다는 추도식에서 나타난 현실정치의 문제점을 철저히 반성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6년 5월의 봉하마을은 달라져야 한다. 여야 정치인이 진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해 온 가치를 공유하는, 즉 갈등과 분열과 이념을 넘어서 화합과 상생과 평화가 함께하는 추도식이 되길 기대한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경일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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