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화재 여행]합강정과 반구정(合江亭과 伴鷗亭)
[경남 문화재 여행]합강정과 반구정(合江亭과 伴鷗亭)
  • 여선동
  • 승인 2015.05.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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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강이 만나는 곳에 지은 선인들의 자취
 
함안대산면 합강정 전경
합강정사


남강, 낙동강이 합류하는 용화산 기슭에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에 간송 조임도와 두암 조방선생이 학문을 닦고, 벼슬에 욕심을 버리고 여생을 보낸 합강정과 반구정.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용화산(龍華山 )기슭에 자리 잡은 합강정과 반구정은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고 기암절벽을 이루어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수업하는 곳이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 합강정=간송 조임도 남강은 남에서 동으로 흐르고 낙동강은 서에서 동으로 흘러 옛말에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에 서출동유수(西出東流水)하면 명당이라 했듯이 이곳이 그러하다. 용화산은 함안과 의령, 창녕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칠 때 교두보로 사용되었던 전략적 요충지로 6·25참전 경찰 승전탑이 송도나룻터 옆에 있다.

대산면 입사마을에서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반구정이 나오고 여기서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확 트인 곳에 건물 하나가 합강정이다.

이곳에는 수령이 350년 되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낙원문 아래로 푸른 강물이 치마처럼 펼쳐지고 강 건너 보이는 곳이 창녕 남지 유채꽃 밭이다. 옆으로 남지 신·구 철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합강정은 조선시대의 누정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조임도 선생이 은거, 수학한 곳으로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으나 여기가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므로 합강정이라는 이름의 편액을 정자에 걸게 되었다 한다.

조임도는 장현광(張顯光)의 제자로 학문에 전념하여 인조반정 후 학행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되어 한때 공조좌랑(工曹佐郞)이 되었고 인조·효종 때에는 대군의 사부로서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이 곳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이 정자는 1633년(인조 11)에 건립한 기와집인데 1980년에 보수를 거쳐 중수한 것이다.

간송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식(埴)의 아들이다. 호는 간송당(澗松堂)이다. 함안군 검암리에서 태어나 효성이 뛰어나서 시묘 살이 하며 죽만 마시면서 3년 상을 마쳤다. 어려서부터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전공했다.

인조와 효종 때에 유일로 여러 차례 임금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현종 때에 특별히 조정에 나오라는 글을 내리자, 봉서(封書)를 올려 말을 전하면서 아울려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고 세상을 사랑하는 뜻을 무릇 14조에 걸쳐 진술하였다. 이것을 보고 상하의 사람들이 모두 훌륭하다고 추장하였다.

돌아갈 때 특별히 부의(賻儀)를 내리고 지평을 증직하였다. 경종 신축년에 송정서원에 모셨다고 함안총쇄록에 기록돼 있다.

간송문집 책판과 금라전신록 책판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합강정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로 간송 조임도의 문집을 인쇄용 목판에 판각한 것인데 190매이다.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은 1639년에 편찬한 함안문화예술지로서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중후기에 지역 문화를 바탕으로 학문과 문학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귀중한 문헌이다.

그 앞 시기까지의 문헌은 주로 유학자가 개인의 종합 문집으로 편찬 주체가 학문적 사승 관계에 있는 유림들이나 연고를 가진 지방관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전신록은 지역의 학자가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편찬되었다.

간송은 인조 때 문관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장현광에게 학업을 닦았고 40여 년 동안 큰 뜻을 품고 자신을 편달하면서 숨어 살았다.

늦게 관직에 나아갔으나 광해군 때 정인홍이 권세를 잡고 퇴계의 학통을 지나치게 공박하자 이에 맞서다가 미움을 받아 칠원으로 낙향했다. 그의 나이 50대 중반에 함안 용화산 아래 합강정에서 심혈을 기울려 저술한 책이다.

인조반정 후 벼슬이 공조좌랑이 이르렀고 현종 때 어사 남구만의 사계로 행의의 표창을 받았다. 진계의 소를 올리고 죽었는데 함안 조씨 중 학문으로는 최고로 꼽는다.

이러한 간송선생의 충절과 학문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1979년 12월29일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하여 보관하고 있다.



 
반구정
반구정 수령 650년 느티나무


△두암 조방선생이 세운 반구정=반구정은 두암 조방선생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의병장으로 활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사의 자질구레한 소리를 멀리하여 여생을 보내려고 낙동강 웃개나루에 세웠던 정자다.

이후 강섶으로 침식돼 186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문장가 성재 허전이 기문을 지었다.

날아가는 기러기와 여생을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정자 반구정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입사마을에서 용화산 임도를 따라 3㎞의 경사길을 올라가면 바위 표지석이 보인다.

조방선생은 왜적을 무찌른 공이 컸으나 벼슬에 대한 욕심이 없고 여생을 반구정에서 마감하고 , 말바위에 세워졌던 반구정은 사려져 유허비만 남았고 반구정은 150년 전에 청송사터로 옮겨지었던 것.

이곳 반구정에 세워둔 비길에는 강물이 동쪽으로 향해 흘러가도다. 약 십리 되는 곳에 소위 말 바위가 있으니 두암 선생께서 임진정난 후에 그 바위에 정자를 지으시고 반구정 이라했다.

정자는 보잘 것 없지만 앞마당 느티나무는 기품 있는 분제처럼 높이 15m, 둘레는 5.5m인 이 나무는 수령이 650년이나 되었다한다. 육각정은 2007년 함안 대산면에서 지어준 정자로 이름은 호기정이다.

낙동강과 남강이 합쳐서 용화산 산기슭을 휘감아 돌아 천하의 절경을 이루고 강물이 한 면을 깍아 기임절벽이 우뚝 솟는 영남의 명승지로, 낙동강변을 끼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한여름 강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다워 악앙루의 석양과 함께 함안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힌다. 차정섭 함안군수는비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강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과 자전거 도로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쏟고 있다.

여선동기자 sundo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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