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잊어선 안 될 그해 6월
[경일시론] 잊어선 안 될 그해 6월
  • 경남일보
  • 승인 2015.06.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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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2002년, 그해 여름은 과거 여느 때의 그 계절보다 뜨거웠다. 한반도 남쪽에서 개최된 월드컵의 열기가 지열을 후끈 달궜기 때문이다. 월드컵의 열기가 절정을 이룬 6월 29일, 한국과 터키가 대구에서 3~4위전을 벌여 온 국민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연평도 인근 NLL 남쪽해역에선 요란한 총탄소리가 울려 퍼졌다. 30분이 넘는 해전으로 우리의 참수리급 고속정에 타고 있던 윤영하 소령을 비롯, 한상국 중사 등 6명이 적의 총탄에 숨졌고, 19명의 병사가 부상을 입었다.

이러나 이들의 희생은 단순한 해상충돌로 취급받아야 했다. 자칫 월드컵의 열기를 잠재울 수 있다는 정부의 판단 때문이었다. 세인들은 그래서 이 전투를 ‘잊어진 전투’라 불렀다. 2005년 그날, 세종회관 앞에서 해군사관학교 주최로 열린 추모식에서 도경원이라는 사람이 시민대표라는 이름으로 낭독한 시에서 우리는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그 한날 월드컵이라는 이름으로 온 나라가 열광할 때/적의 도발은 이 나라의 평온을 깨트렸고/나는 맞서 싸웠노라 빗발치는 총탄 속에/그날 이 나라를 위해 바친 우리의 죽음이/사람들의 발길에 차여 굴러다니는/축구공보다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하략)’

이에 앞선 그해 4월 24일, 남편의 기일을 불과 두 달 앞두고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 여사가 미국으로 떠났다. 그녀의 일성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홀대하는 나라는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떠나면서 그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면서 연평해전은 재조명되고 국가원수까지 추모식에 참석하는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2008년 한 독지가는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막노동으로 연명하면서도 미국내 전쟁 희생자들과의 교류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김종선씨를 조국으로 불러들였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나라가 나서 그때의 희생자들을 재평가하고 나섰다며 그녀를 설득했다. 한상국 중사가 전사한지 5년 만인 2008년 어느 날이었고 김종선씨는 남편의 추도식에 참석,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새로 건조된 함정에 그때의 희생자 이름을 명명하며 다시는 서해 5도에서 이런 처참한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재무장하고 있으니 정권에 따라 달라진 연평해전 희생자들의 위상을 절감한다.

그 해전을 작품으로 승화한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기획된지 8년 만에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지난 2일 시사회에 참석한 유족들과 시민들은 당시의 30여분에 걸친 생생한 전투모습과 전우애, 끝까지 배를 지키려던 장병들의 모습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더욱 감동인 것은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10분에 걸쳐 계속됐다는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7000여명의 이름이 모두 열거되는 동안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니 그 또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잊을 수 없는 해전을 영화화한 이 작품을 두고 극우적 시각이라는 비판이 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 쏟아붓던 비난이 이번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종북세력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단언컨대 연평해전은 우리가 길이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사건이다. 그들의 희생이 월드컵으로 인해 발에 차이는 공보다도 관심 밖으로 내몰았던 사실을 우리는 분명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월드컵에 가려진 그해 6월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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