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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기행(68)서산대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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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4  19: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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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영정
 

 

고운 최치원 선생이 세상사에 더럽혀진 때 묻은 귀를 씻고 지리산으로 들어간 세이암과 서산대사가 세속과의 연을 끊고 삭발산승의 불제자로 출가한 ‘원통암’을 찾아서 길을 나섰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전도를 지나면 섬진강의 굽이진 물줄기가 멈춘 듯 그림 같다. 언제 보아도 옛이야기를 듣던 할머니의 무릎같이 포근한 강이다. 임진왜란, 독립운동, 6·25로 이어지며 선열들이 흘린 피로 혈류성천이 되어 가슴 깊이 흐르는 애환 서린 강이고, 매화 피고 이화 피는 하동포구 칠십리에 벚꽃 길도 칠십리로 절승이고 명승지지만 역사에 얼룩진 분단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아 칠흑 같은 밤이면 신음을 하고 만월의 밤이면 탄식을 한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속내 깊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원한에 격분했던 출렁임도 잠재우고 울분에 지쳐버린 설움까지 씻어내주는 아름다운 강이다.

애환의 역사가 굽이굽이 서린 강, 주옥같은 옛 노래가 흘러가는 강, 하고 많은 소설로 이어지는 강, 시인묵객 가슴속에 꿈을 꾸는 강, 매화피고 이화피면 가슴 벅찬 강, 백사청송 어우러진 고향의 강 섬진강!

섬진강을 바라보면 풍류객이 따로 없고 섬호정에 오르면 시인묵객이 따로 없다.

악양동천 무너미들은 풍년가에 흥이 겹고, 최참판댁 행랑채는 탐방객이 넘쳐나며, 화개장터 엿장수는 제풀에 신명났고 화개천 맑은 물은 바윗돌을 휘감는데 녹차밭의 아낙들은 손놀림이 분주하다, 화개장터에 들어서면 김동리 선생의 소설 역마의 주인공인 성기도 옛 세월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사람들 속의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행여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역마살의 벗이 되어 옥화네 주막에서 참게탕 끓여 놓고 은어튀김 한 접시에 동동주잔 마주하고 날 새울게 빤한데 미련만 남겨두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쌍계사 입구를 지나 신흥마을 삼거리에서 칠불사 가는 길을 왼편에 두고 신흥교를 건넜다. 커다란 노거수가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 앞에서 그늘을 내어주며 한 숨 돌리라고 안내판이 반기는데 건너편 암반석이 고운 최치원선생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며 귀를 씻었다 하여 세이암이고 그늘을 지우는 노거수는 선생이 꽃아 둔 지팡이가 되살아난 푸조나무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23호다. 몸통은 속이 썩어 부재로 메웠어도 하늘 높은 가지는 무성하게 푸르렀다. 신흥천 계곡을 나직하게 가로막은 기다란 보를 건너 세이암을 찾았다. 물에 잠긴 반석은 빚은 듯이 결이 곱고 산기슭에 뿌리를 박은 우람한 바위들은 두루뭉술한 육중한 자태를 청정옥수에 그림자를 지운다. 두 손을 맞대서 한 움큼의 물을 떠서 얼굴을 씻고 선생의 옛 모습을 그리며 양 귀를 씻었다. 일그러진 얼굴이 다시 환하게 비치면서 바닥에 깔린 자잘한 자갈돌까지 훤하게 들여다보이는데 떠가는 흰 구름에 하늘도 잠기었다. 왕성분교 옆으로 예닐곱 집의 신흥마을 끄트머리 신흥1교 앞에서 산길을 오르는 돌계단이 ‘서산대사 옛길’ 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로 이어지는 옛길이라는 아치형의 문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바위가 버티고 서서 겨드랑이 밑으로 돌아가란다. 발끝 이래는 수십길의 낭떠러지이고 계곡의 물소리는 요란한데 계곡의 언저리로 이어지는 길은 아찔한 벼랑끝을 끊어질듯 아슬아슬 이어져 갔다. 그 옛날에야 화개장 장꾼들이 벽소령을 넘어서 마천장을 오갔고 장터목의 장날에는 지리산 준령을 넘고 넘던 길이며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눈물 젖은 길이었다. 한때는 야음타고 빨치산이 오르내린 소름 돋는 길이지만, 서산대사의 수행의 길이었고 구도의 길이었으니 두 손목을 잡던 사람 멀리 보낸 사람이나 베갯잇을 적시며 돌아눕던 사람이나, 미워했던 옛 사람이 그리운 사람이나 원도 많고 한도 많아 설움 겨운 사람이나 번민도 작별하는 해탈의 길이요 선경으로 인도하는 비경의 옛 길이다. 쉬어 갈까 할 때쯤이면 서산대사의 도술로 생겨난 의자바위가 기다리며 반기는데 대사는 바윗돌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의 발자국이 훗날에 길 된다고 눈 덮인 들판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하셨는데. 여의도의 요즘 길은 왜 이리도 어지럽나?

 

서산대사 옛길 들머리
 
4.2km인 옛길의 끝머리에 닿으면 열댓 집이 어우러진 의신마을의 고즈넉함이 출렁다리가 걸쳐진 화개천의 절경에 평화로움을 곁들인다. 출렁다리를 건너서자 집집마다 민박의 간판이 달려 있는 좁다란 골목길 입구에 ‘서산대사 출가지 원통암’이라는 팻말이 나왔다.

비탈진 골목길을 벗어나자 산속의 숲은 더욱 무성하고 작은 도랑의 물소리는 또랑또랑하게 청아한 소리로 흐르고 있었다. 도랑 건너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크고 작은 바위 밑을 몇 번이나 돌고 돌며 끊어질듯 이어지는 산길은 깊어만 가는데 꼬리를 짊어진 다람쥐가 언제부턴지 바위를 건너뛰며 쪼르르 앞장을 섰다. ‘대사께서 축지법이라도 일러주셨더라면…’ 군소리가 채 다하기도 전에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지켜보던 다람쥐가 깨소금 맛이라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오두방정을 떨더니만 어디론가 내빼고 코빼기도 안 보이니 간간이 들리는 산새소리 말고는 고요하고 적적하여 외로움이 스며든다.

잔꾀가 많으면 이르는 사람이 없고 잔소리가 많으면 따르는 사람이 없는 건데 0.9km라는 길이 내라고 늘겠는가.’ 이끼 낀 돌담장의 축대가 양편으로 마주서서 미로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층층이 층을 이룬 다랑이 논이었으니 지게지고 농사짓던 옛 사람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부끄러워 군말 없이 걷는데 첩첩산중 외진 길을 혼자 걷는 길손이 걱정스럽던지 줄행랑을 쳤던 다람쥐 녀석이 어느새 다시 나와 바윗돌을 건너뛰며 앞장서며 쫑긋댄다. 이럴 땐 미물도 의지가 되고 반가우니 사람도 미물과 다를 바가 없다싶다. 그래 앞장서줘서 고맙구나했더니 신바람이 났는지 쫄랑대며 앞서는데 저만치에서 대숲이 보이고 이내 ‘서산선문’이라는 현판이 붙은 기와지붕의 나무대문이 가파른 돌계단 위로 단아하게 높이 섰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추녀를 맞댄 두 동의 목조건물이 단청도 안 올린 채 군더더기 한 점 없이 정갈하고 소박하여 단정하고 간결한 한옥의 풍미를 오롯이 지니고 ‘원통암’ 이란 현판을 달고 초연하게 앉았다. ‘휴휴선림’이라는 법당 안을 들어서자 창호지를 곱게 바른 좁다란 미닫이문 네 짝으로 벽장같이 수미단을 꾸몄는데 가운데 두 짝을 열어 놓고 관세음보살상이 미소로 반기신다. 처마를 맞대은 옆의 건물은 ‘서산대’라는 현판이 붙었고 출입문 위에는 ‘청허당’이라는 당호가 붙었는데 안으로는 청허 서산대사의 존영이 모셔졌다. 헌향의 예를 갖추고 문밖으로 나서니 첩첩산중 깊은 골은 숨죽인 듯 고요한데 청학의 둥우리에 학은 아니 돌아오고 뜬구름 바라보며 객이 홀로 드는구나.



 
세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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