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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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5.06.0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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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경남지역의 문인 등단50주년 기록자들(14)
청마 유치환이 왜 김춘수의 등단 과정에서 대부 노릇을 했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자. 우선 청마에게는 고향 땅 통영의 후배인 김춘수를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통영 사람이면 다 다니는 통영보통학교의 후배인 데다 김춘수는 경기중학에 입학했으므로 후배 중에 수재로서 뭔가, 해낼 수 있는 재목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 데다 통영에서 유치원을 경영했던 청마의 부인 권재순 원장의 원생으로서 총기 있는 유년시절에 대해 김춘수 학동을 유념하고 있었을 것이다.

청마가 결혼식을 했을 때 김춘수는 원생을 대표하여 권재순 신부와 유치환 신랑에게 꽃을 바쳤다. 필자는 이 대목을 ‘청마와 춘수’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며칠 전 중앙일보 미주판에 이 시가 실려 해설까지 곁들여 소개되었다. “아, 청마가 결혼식을 올릴 때/ 올리며 인생을 시작할 때/ 유치원생 춘수가 화동이 되어 꽃을 바친 것/ 통영에 가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아는 사람은 말할 때 시인이 된다/ 꽃다발이 된다”

어쨌거나 청마는 김춘수를 데리고 6.25수복후 상경하여 잡지사를 돌면서 어눌한 입담을 동원하여 최선으로 김춘수의 시를 칭찬하고 원고를 건네 주고 돌아오곤 했다. 청마는 이 무렵에 이영도와의 관계에 깊숙이 발 들여놓던 때였으므로 머릿속에는김춘수와 이영도가 동시에 오버랩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청마의 등단기 주선에 의해 김춘수는 등단이라는 제도권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첫시집 이후 비교적 활발한 문단 활동을 해나갔다. 1948년 첫시집 ‘구름과 장미’이후 1950년 ‘늪’, 1951년 ‘기’, 1953년 ‘인인’, 1959년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1969년 ‘타령조’, 1974년 ‘처용’ 등 시집들을 계속해 발간하면서 우리나라 주요한 시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정도의 시집 행간을 우리는 주목해 볼 수 있다.1959년 ‘꽃의 소묘’까지가 김춘수의 언어와의 밀월 상태라는 점이다. 그 정점에 ‘꽃’이 놓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대표작을 내면서 그는 잠시 시대적 관심을 보인다. 1950년대 후반 동구의 민주화를 바라보면서 ‘부다페스트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를 낸 것이다.“다늅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트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보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시 시작부인데 헝가리 시민들이 소련의 압제로터 벗어나기 위해 항거한 민주 대열의 한 편모를 그렸다. 그 중간부에 한국의 소녀와 오버랩시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김춘수의 저항적 의식이 단순히 헝가리에만 국한해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김춘수는 그 스스로 이런 시를 선호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의식 속에는 민주적인 의식과 저항의 물결이 미동으로 드러나고 있음에 대해 우리는 이제라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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