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다크 투어리즘’과 하시마섬
[경일시론] ‘다크 투어리즘’과 하시마섬
  • 경남일보
  • 승인 2015.06.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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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이른바 ‘군함섬’이라고 불리는 하시마섬은 외형만으로도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외형만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받고자 하지 않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런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자랑하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수치스러운 것은 철저히 감추는 간교한 전략 때문이다. 그들은 하시마섬이 오늘날의 풍요를 가져다 준 근대산업의 유산으로만 여긴다. 문제는 역사적 진실을 그들의 후손들에게 바르게 알리지 않는데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고자 하는 뜻은 인류와 역사의 보편적인 가치를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데 있다. 일본 정부는 하시마섬과 근대산업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면서 ‘서양기술이 일본문화와 융합해 산업국가가 형성된 과정을 보여주는 곳으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그들은 신청서에서 ‘석탄 수요증가를 위해 일부 탄광에서 죄수 노동은 중요한 노동력’이라고까지 했다. 한술 더 떠 하시마섬의 한국인 강제노역이 시작되기 전인 1910년 이전의 산업시설을 지정받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역사관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치졸함을 넘어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끝을 보여준다.

하시마섬은 당시 조선인 광부들이 허리도 펴지 못하는 지하해저 갱도에서 12시간씩 강제노역을 하던 악명 높은 광산이었다. 광부들은 찜질방 같이 더운 막장에서 기름 짜다 남은 깻묵 찌꺼기로 끓인 무국이 전부인 하루 두 끼만 제공되는 음식으로 연명했다. 그들은 바다로 둘러싸인 지옥섬을 탈출하지 못해 목숨을 빼앗기기까지 했다. 하시마섬은 자랑스러운 근대산업 유산이기 이전에 악명 높은 역사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군함처럼 생긴 하시마섬의 독특한 외형은 오늘날도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명소이다. 하시마섬은 폐광된 후 이른바 ‘폐허 관광’이라는 상품으로 새로이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하시마섬의 관광해설사 누구도 수탈 자본주의의 역사가 자행됐던 강제노역의 현장이라는 점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곳은 오로지 오늘날 경제대국으로 만들어준 자랑스러운 근대산업의 교육현장일 따름이다.

‘역사를 잊는 자는 망하는 길에 접어든 사람이며, 역사를 기억하는 자는 다시금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는 글귀는 유대인 학살의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홀로 코스트’ 박물관 입구에 새겨 놓은 것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생체실험도구, 처형대, 가스실, 하물며 희생자들의 머리카락과 신발, 옷가지에 이르기까지 잔악한 역사현장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방문자들은 유대인을 구원해 준 ‘쉰들러’에게 보낸 생존자들의 감사편지를 읽으며 생명존중의 역사를 배운다.

관광의 측면에서 보면 인류의 성스러운 역사적인 장소만이 교육목적의 명소가 아니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가치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현장을 제대로 되살려내는데 있다. 일본 정부는 하시마섬의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과거의 역사는 끄집어내어 곱씹어야만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교훈을 줄 수 있다. 관광은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켜 준다. 어두운 과거의 경험은 아프더라도 환부를 드러내어 노출시켜야 우리를 치유의 세상으로 나가게 해준다. ‘다크 투어리즘’의 교육적 기능은 어두운 과거로부터 치유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다. 보여주고 싶은 역사만 보여주고 부끄러운 역사는 감춘다면 그들의 후손들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경일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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