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생물자원,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경일포럼] 생물자원,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5.06.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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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만 (환경부 차관)
해마다 유월이면 허리춤까지 자란 익모초(益母草)를 슬겅슬겅 베어 고이 말리던 시골의 모습이 떠오른다. 잘 마른 익모초를 가을걷이가 끝난 후 말린 약쑥, 늙은 호박과 함께 가마솥에 고아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동의보감이나 향약집성방에 따르면 익모초는 어혈을 풀고 혈액순환을 도와주며, 특히 출산 전후 여성의 질병치료에 효과가 커 ‘어머니에게 좋은 풀’이라는 뜻으로 불렸다. 약쑥 또한 그 추출물에 함유된 유파탈린(eupatilin)이라는 성분이 위염치료 등에 효능이 있어 천연물신약으로 상용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생물자원의 이용과 생산과 관련해 전통에 기반을 둔 지적활동의 결과물을 ‘생물자원 전통지식’이라 한다. 최근에는 발전된 기술과 결합해 의약품을 비롯, 기능성식품, 화장품 등 그 활용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2012년 말 추진된 생물자원 전통지식 실용화 지원 구축사업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통지식을 이용해 만들어진 의약품의 시장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43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식물을 재료로 한 약제품의 74%는 전통의약에서 사용했거나 연관된 용도로 사용된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전통지식은 신규개발이 가지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앞으로 그 관심과 투자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지난해 발효된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에 관한 나고야 의정서’는 각국의 전통지식에 따른 생물자원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에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지불을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전통지식의 발굴과 자원화를 위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통지식을 활용한 우리나라 의약품에 대한 세계시장의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의약품은 임상실험 등의 절차를 거쳐 완제품 개발까지 최소 5년 이상의 기간과 투자를 필요로 하다. 실패 시 투자비용 회수가 거의 불가한 특성을 가진다. 반도체나 자동차 매출액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 의약업계 규모로는 이렇듯 불확실한 성공을 전제로 한 장기간의 투자가 쉽지 않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투자부족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매출액과 투자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생물자원 전통지식을 조속히 발굴하고, 분산 관리되고 있는 생물자원 전통지식을 DB로 종합화·체계화함으로써 신규 제품개발에 따르는 초기 투자비용과 위험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급선무다. 또한 정부 차원의 과감한 R&D 투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투자비용이 부족한 민간을 대신해 정부가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그 결과물인 특허 등을 민간이 공유하게 함으로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생물자원의 전통지식을 둘러싼 국가 간 또는 개인 간 법적 분쟁 등을 대비해 관련 법제의 정비도 시급히 챙겨야 할 과제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후손들이 살아가게 될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수많은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생물자원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 또한 그중 하나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미래 세대를 위한 소명의식을 갖고, 우리의 생물자원을 지키며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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